⑩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

에베소서 6 12우리의 씨름은 혈(하이마)과 육(사르카)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앺우라니오이스)에 있는 악(포네리아스) 영들을 상대함이라

혈은 혈연을 의미하므로,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를 의미하며, 사르카는 죄의 몸을 의미하며, 이는 첫사람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대적한 선악지식 나무를 상징한다. 선악지식 나무는 마치 인공지능과 같은 천사의 지식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나타내는 것으로 독버섯과 같은 존재로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 죄의 몸을 두게 하신 것이다.

앺우라니오이스는 심령 속의 하늘을 의미한다. 심령 속에는 옛성전이 있는데, 이 옛성전에 죄의 몸에 해당하는 자기라는 우상이 있는 것이다. 포네리아스는 타락, 음모, 죄악 등으로 자기라는 탐욕의 우상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 성전에 주인처럼 앉아있는 모습이다.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은 성도의 영적인 상태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들의 영향 아래 있게 되면 결국 자기의 심령 속의 성전에 자기라는 우상이 그들의 영향 아래 자신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전쟁은 그 성전에 누가 앉게되는가 라는 것이다. 이게 구원과 직결된다. 자기라는 우상을 쫒아내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자기를 부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영적 전쟁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그 대상에 대해 거의 대부분 사탄 또는 악한 영으로 말할 것이다.

영적 전쟁도 육적인 전쟁과 마찬가지로 피아식별을 할 줄 모르면 전쟁에서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을 하게 되는 나는 누구이며, 그 대상은 누구와 싸우는가를 알지 못하면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유아기를 지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자아에 대한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기라는 정체성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모르면 전쟁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나타나는 자아는 바로 육적 자아라는 것이다.

이 육적 자아는 대략 일곱가지의 특성을 갖는 집합체 형식으로 되어있다.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경험과 지식,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육적 자아는 하나님과는 적대적인 대립을 세우기 때문에 육체 속에 갇혀있는 영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 말씀도 거부한다.

우리는 영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바르게 설 수 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서 육체와 영이 결합된 존재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영은 흙이라는 육체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흑암 속에 있는 것이다. 비유로 말을 하자면, 세상에 살다가 죄를 범하여 감옥에 들어가 있는 어떤 사람과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세상에서 입던 옷과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번호가 적힌 죄수복을 입고 일정기간 감옥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감옥에서 그 사람의 정체성은 죄수복에 적힌 번호가 될 것이다. 인간의 육체 속에 갇힌 영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육체 속에 갇혀 있으며, 죄의 몸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감옥 속에 갇혀있는 자가 자신의 이전의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부모를 기억하고 자신이 살던 집을 생각하고, 함께 살아온 가족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때만 영적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씨뿌리는 비유로 설명한다. 흙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경작하면서 생명의 싹이 자라듯이 육체 속에 갇힌 영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묵상과 성경의 말씀을 읽으므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성경 속에서 말씀을 하기를 영이 육체 속에 갇힌 근본적인 원인은 영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 그게 탐심이며,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께 대하여 죄라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창세기 217절에서 하나님께 대한 죄인은 두번 죽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죽고 죽으리라) 하시니라.

한글 번역 성경은 반드시 죽으리라 라고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성경은 죽고 죽으리라 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두번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 흙에 갇힌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자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게 회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동참하게 된다.

첫번째 죽음은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물세례이다. 로마서 63-7절에서 세례와 죄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사람은 스스로 죽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워 십자가의 죽음으로 회개하는 인간들을 대속하는 것이다. 단지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서 죽는 것 뿐만 아니라, 함께 죽었음을 믿게 하여 죄인도 역시 죽으므로 죄를 사면받게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성도가 된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백보좌 심판은 율법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받게 된다.

두번째 죽음은 죄의 몸에 대한 죽음이다. 이것은 불세례이다. 이전의 옷을 벗고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다. 죄의 몸은 육체와 영이 만나서 인간이 되는 가죽옷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에게 입혀주신 옷이다. 그런데, 이는 육체로 비롯된 옷이므로, 그 옷을 벗고 하늘로부터 오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성령세례인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 자는 새로운 옷(영의 몸)을 입으므로 영이 빛을 받아서 살아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43-44절에서는 영의 몸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설명하였다. 영의 몸을 부활한 자의 몸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육체가 있으므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부활한 자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옷을 갈아입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활한 것을 믿을 때,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게 된다. 이를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천국)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셋째 하늘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게 재림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자는 성도의 심령 속에 천국이 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 속에 육체로부터 나타난 자기의 정체성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난 영적 자기 정체성이 혼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피아식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참된 나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영적 정체성이고, 나의 적은 다름 아닌 육으로부터 비롯된 정체성인 것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피아식별을 하지 못하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대상은 육적 자아이며, 부인해야 하는 주체는 영적 자아인 것이다. 이 둘은 육체가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은 영에 대해서 감옥과 같은 곳이다. 세상에도 감옥을 관리하는 자가 있다. 교도소장이 있으며, 부하 직원도 있을 것이다. 죄수를 법으로 통제하고, 불법을 저지를 때는 법으로 처벌하고, 노역도 시킬 수 있다. 영적으로 비유하자면 이들은 죄인에 대해서 악역을 맡은 공무원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도소장은 사탄, 그 밑에 있는 자들은 악역을 맡은 천사들이다. 그래서 어두운 영(마귀 등)이라고 표현한다. 모두가 자신이 맡은 바 역할을 다 할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육에 대해서 두 번 죽은 자에 대해서는 세상(교도소)을 떠나기 전이라도 죄없음을 인정하는 도장을 찍어준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악역을 맡은 간수들이 더 이상 간여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육체로 인해서 세상에 살아갈 뿐인 것이다.

요한139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한1518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다만, 죄인의 굴레에서 벗어났더라도, 사탄이나 어두운 영이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육적 자아가 괴롭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대로 결과가 주어진다. 입으로 말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고, 생각으로 주어지는 것이 영적 전쟁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싸움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고 하지만, 이러한 정체성을 깨닫는 자는 반드시 이기게 돕는 분이 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에 세워진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말씀을 통해서 돕게 해주시고, 기억나게 해주신다. 나의 영적 정체성을 깨닫는 자는 날마다 영적 힘을 얻기 위해 생명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죄에 대해서 연합하여 죽게 하신 분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부활하게 하신 분은 성부이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기억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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