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하늘)
(복수 하늘)
마태복음 3장
16-17절「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호이
우라노이)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톤 우라논)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장 10-11절「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투스
우라노우스)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우라논)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등장하는 하늘은 관사가 있는 복수 하늘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이와
같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나, 아들이
되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삼위일체 이론을 근거로 예수를 성자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안으로 들어오는 자를 모두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고 싶으신 것이다.
삼위일체의 사상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하나님이신데, 세분의하나님이 하나라는 말로
설명한다. 마치 하나님이 세분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이해불가능의 말로서
신비를 조장한다. 삼위일체의 사상은 기독교를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도 되며, 하나님의 아들도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을 빌려 잉태되었으며, 그는
태어나서 30세가 되던 때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았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육으로는 첫사람 아담의 죄의 몸을 이어받았으며,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죄의 몸이라는 사슬을 끊어셨다. 그래서
첫사람 아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므로 죽으신 것이다.
예수님이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 그래서
죽은지 삼일만에 영이 부활하신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부활이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것이다. 육은 죽으므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영이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후에, 세상에 사십일간 있다가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2절『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하나님으로 만드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으로 세상에 왔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을 오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신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몸을 의미한다. 죄의
몸으로 대속의 죽음을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그는 육의 몸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는 첫사람을 의미한다. 육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가 바로 첫사람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첫사람은 죄의 몸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오신 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몸에 대해서 죽임을 당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영의 일체성을 의미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원래 이렇게 하나였는데, 범죄한 천사로 인해서 안식이 깨어지고, 그들의 영을 가둘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시어, 하나님 자신이 성령 밖으로 나가셨다는 것이다. 성령
안에 있는 하나님과 성령 밖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누어지고, 하나가 되지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범죄한 천사들의 영을 구원하기 위한 사역을 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2절「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누가복음 6장 23절「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토 우라노)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마태는 복수 하늘, 누가는 단수 하늘로 표현하였다. 마태는 현재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로, 누가는 육체가 죽어서 가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표현했다. 그 날이라는 말이 의미를 준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전하면, 율법주의자들은 핍박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준은 율법주의이기 때문이다.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도록 명령하셨다.
백성들은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했으나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죄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너희들은 모두 죄인들인데, 율법을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깨달으면, 희생제사를 통해서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는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다. 따라서 율법은 엄밀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 속에 생명나무(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다. 죄는 그 열매를 먹는 것 이전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 나무를 통해서 그 탐욕의 마음이 있음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면 죄가 아니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죄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율법주의라는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제거한 인본주의 사상인 것이다. 율법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 안에서 만연한 율법주의(인본주의) 사상은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세우게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명에 얽매여 그것을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계명이지만,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규정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 율법주의다.
또한 예수님을 닮아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듯한 말도 다 율법주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을 하면서, 생활
속에서는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데, 많은 목사들은 자기를 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인간들은 죄인들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로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날마다 죽노라』라고 외치는 사도바울의 말을
기억하지 않으면, 율법주의(인본주의)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율법주의에 빠지는 자들의 모습은 행동을
강조한다. 야고보가 말하는 규정을 들어서 행동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서『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행함으로 나타나지만, 행함을 의무적인 규정처럼 생각하게 한다면, 율법주의 생각인 것이다. 행동을 강조하는 자들은 율법주의(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율법주의(인본주의)를 섞는 기독교는 이미
참된 진리의 복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모든 종교가 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자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오늘날 성도는 교회 안에서 영적 분별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영적 분별이 있으면, 열처녀의 비유처럼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율법주의(인본주의)가 섞여 있음을 알게한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도 마찬가지이며, 양과 염소의 비유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톤 안드로폰)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토이스 우라노이스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을 의미한다. 성도는 이 셋째 하늘인 천국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톤 안드로폰(τῶν ἀνθρώπων)은 그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 있지만 어둠에 있는 자들이다. 여기에서 착한 행실은 『선한 사역』으로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행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교회 안의 이야기가 된다.
구약시대 성전에는 언약궤가 있었으며, 성부를 상징하는 두 돌판과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맛나와 성령을 상징하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다고 히브리서에는
증거한다. 히브리서 9장
4절「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성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면,
성령으로 성부와 연결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된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셨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거듭난 자들 안에 거룩한 영(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세례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소유한 거룩한
성전이 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거듭난 자들을 "성도", 즉 거룩한 무리(구별된 무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복음의 가장 핵심적 목적은 신도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심령 속에 성전을 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마태복음
6장 1절「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의와 자기의 의를 구분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보여주신다. 죄인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죄인을 대속하여 죽으심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은 자는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인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구원을 얻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타내려고
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런 자들이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들이며,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깨닫지도 못하고, 악이 가득한 자이며, 자기도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항상 덤덤하고
자기 원하는 것을 쉽게 기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회개할 수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회개의 의미조차 모르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가출한 자에게 아버지가『이제 그 마음을 죽이고
돌아오라』고 하실 것이다. 그 마음이 죽어야만 한다. 이게
회개다.
그런데 그 마음이 죽지 않고 아버지께 돌아가기만
하면, 다 받아주실 것으로 오해한다.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아버지로만 생각한다. 죄를 징계하는
아버지의 두려운 눈빛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죽지 않으면 아버지는 받아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 마음이 죽을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참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하셨다. 마태복음에는『그
문이 좁고 협착해서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찾는 자도 적다』고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는 자만 이 문을 찾게된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좁고 어렵기 때문에 이 문을 싫어한다.
문이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평생 예배한다고 반드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같이 생활한 제자들도 되지 않았다. 구원이
쉽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일 것이다. 구원이 쉬워보이는 길은 멸망 길일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는『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이
원하셔도, 사람들 스스로 회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
9-10절「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헤 바실레이아)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 라는 말이며, 기도하는 자는 땅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땅에 있는 인간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 넣으신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요, 세상에 갇힌 자라는 말이다. 하나님 앞에 하나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된다.
예수님이『하늘(우라노스)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씀하셨다. 우라노스(영어 heavens)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복수로 사용될 경우에는 성도들의 하나님 나라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제자나 성도들의 심령 속에는 하늘로부터 세워진 성전이 있는데, 이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마치 구약시대 지성소에 하나님이 계시는 모양과 같은 개념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성령이 계신다고 했지만, 성부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는 것이다. 성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예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자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나라는 바실레이아로서 왕국이라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권능이 임하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의미는『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지게 해 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한다.
통치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 지는 곳이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하심의 개념이다. 성령이 100% 임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요, 하나님의 완전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나라이 임하옵시며』의 의미는『이
세상에 임하여 달라』는 의미도 있고,『내 안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의미도 있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하느냐 하면,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이고 그것을 깨달아라라고 말하고 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 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1차적인 의미는 이 세상에 메시야 왕국이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다스리는,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을 말한다. 천년왕국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예수님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은 세상에서 무엇을 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해야 될 것은『창세
때 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있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이룬 뜻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6장 40절에『아들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라 했다.
하나님의 뜻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마다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뜻이『창세 전에 이미 세워졌다』라는 말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를 위해서 이 뜻을 세운 것이 아니라,『흠이
있고, 거룩하지 못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뜻을 세우셨다. 『흠이
있고, 거룩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말한다. 창세
전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이런 뜻을 세웠겠는가? 창세
후에 발생할 일에 대해서『다 아시고 이런 뜻을 세웠다』고 말한다면,『하나님의 창조가 완전하지 못하고
변형될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컷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6장 14절「너희가 사람의 잘못(파랍토마타)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호 우라노이스)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마가복음 11장
25절「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죄와 허물이라는 말을 한다. 에베소서 2장 1절「그는 허물(파랍토마신)과 죄(하마르티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마태복음 6장 14절에는 파랍토마타를 잘못이라고 번역했고, 에베소서 2장 1절에서는
허물로 번역했다. 파랍토마신은 옆으로 미끌어지다, 탈선하다, 과오를 범하다 라는 의미다. 그러면 하마르티아는 죄라고 번역했는데, 로마서 5장 12절에서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따라서 이 죄는 세상에 있는 죄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세상으로 들어온 죄를 말하며, 결국 에덴동산 즉 하나님
나라에서 있었던 죄를 의미한다. 이 죄를 사람들은 원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파랍토마타는 세상죄를 의미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을 한다. 요한복음 1장 29절「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죄와 모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하심을 얻는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 모독죄라는 것이다.
신자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그 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중재자로 나사서 그의 피로 예수와 연합된 자를 용서해 달라고 해서 하나님이 용서해주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하나님께 죄를 지은 자인데, 용서해준 것 같이 남을 용서해주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 잘못은 타인이 자신에게 행하는 행하는 것인데, 끝없이 용서하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이 사단의 가시를 들게 할 것이다.
그런데, 개역개정에서
빚을 죄로 번역한 것이 있다. 마태복음 6장 12절『우리가 우리에게 죄(오페일레마)지은
자를 사하여(아피에미) 준 것 같이 우리의 죄(오페일레미)를 사하여(아피에미) 주옵시고』
헬라어 아피에미를 우리에게 죄지은 자라고 표현했는데, 생략하다, 면제하다 라는 의미다.
오페일레마는 죄라기 보다는 빚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진 빚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죄로 인하여 세상에 흙으로 된 인간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께는 빚이 있는 것이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데, 그 빚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어므로 갚아준 것이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적지 않게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진다. 죄를 짓는 빚, 신세를 진 빚, 돈을
빌려서 갚지 않는 빚 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빚이다. 이 빚들은 영적으로
죽어있으므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καὶ ἄφες ἡμῖν τὰ ὀφειλήματα ἡμῶν, ὡς καὶ ἡμεῖς ἀφήκαμεν τοῖς ὀφειλέταις ἡμῶν
다시 번역해보면,『우리의 빚을 우리에게 탕감해주듯이(호스 카이 ὡς καὶ)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 주도록 하고』호스 카이에서
영어 번역은 as also로 번역하므로 ~주듯이 라고 번역했지만, 호스는 관계대명사로 보아야 한다. 빚은 죄를 의미한다. 한글 개역개정은 헬라어 성경의 내용의 뒷부분을 앞쪽으로 번역했고, 앞부분을
뒤쪽으로 번역했다. 먼저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을 청산해주시고, 그리고
우리도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주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 25-26절「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호 우라노이스)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장 31-32절「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호 우라노이스)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보좌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예배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을 추구하지 말고 하늘의 것을 먼저 추구하라는 것이다.
내일 하나님 나라와 의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염려하는데,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염려하라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열심히 사역을 하는데, 어느 날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심령 속의 임마누엘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에 대한 걱정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 염려해야 하는 것은 임마누엘이 되는 것인지를 염려하라는 것이다.
염려와 두려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심판받을 죄라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는 불못에 들어간다고 요한계시록에서 말한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예수님은 위로하지
않으신다. 잠언에『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올무에 걸리거니와』라고 했다.
속박에 걸린다는 말이다. 사람을 왜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있을 때 우편강도가 좌편강도에게『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라고 한 말을 상기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둘째
사망으로 간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제자들이 두려워 떨었다. 예수님이 그 배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도 두려워서 떨었던 것이다. 우리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도 예수님은 주무실 수 있다. 에수님이
찾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제자들은 풍랑에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이것은 자기가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배가 가라앉고 가라앉지
않고는 에수님의 손에 달려있다. 즉 죽고 사는 것은 주님께 달려있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깨울 때까지 주무시는 것이다.
인생의 배에 풍랑이 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인생의 배가 가라앉지 않게 노력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깨우는 사람인가? 구원받는 믿음은 증명될 수 있다. 주님은 제자들이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 주무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를 깨울 때까지 기다리신다. 믿음은 상황에 반응하지 않고 예수님께만 반응한다. 이 땅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구원받는 믿음은 능히 주님을 신뢰하게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그
두려움 속에는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풍랑으로 부터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는 자는 주님께만 반응하는 자들이다. 상황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께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에 대해서는『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거듭난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육이 주인이므로 항상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두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영의 몸과 육의 몸이다. 그래서 육의 몸을 부인하라고 하신다. 영의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몸이다. 비록 거듭났을지라도 현재 육의 몸이 있으므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에
예수님이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다만 세상에서 있는 동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거듭난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다.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다만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길만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 11절「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호
우라노이스)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것인 임마누엘 신앙이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구하라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구하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4-11절에서『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네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니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예수님이『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셨다. 성령이 오시면 기억나게 하고, 깨닫게 해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했다.
마태복음
7장 21절「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여, 주여』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하늘로 부터 태어나라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다. 날마다 죄를 고백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은 자가 되어야만 한다. 날마다 죽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죄를 다 가져갔다 라고 하는데, 그것을 믿지 않고 매일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모른다 라고 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여전히 죄인들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인간들이 스스로 아무리 믿습니다 라고 외쳐도, 예수님이 세상에서 이루신, 세상죄를 다 가져가셨다 라는 말씀을 믿지 않으면, 믿지 않는 자가 된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모르면 곤란하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라는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에서 같이 죽어가던 죄인이라든가, 문둥병자,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들이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냥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54절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천국에 갈 수 있다 라는 표현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라고 표현을 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늘로부터 난다』라는 말은 새 생명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새 생명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죄가 다 사해지고, 의로워져서 천국에 들어간다 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안 믿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마지막 날에 많은 사람들이『우리가 큰 권능도 행하고 선지자 노릇도 하고 했는데, 예수님, 어떻게
우리를 모른다고 하십니까?』 라고 말한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열심히 예수를 믿고 온갖 일들을 행했던 자들인데, 왜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모른다 라고 하시는 것인가? 결국 이 사람들은 인자의 살과 피를 마신 적도 없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적도 없고, 죄사함을 받은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를
시인한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 분과 하나가 되는 자들이다.
예수를 부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날마다 교회 공동체에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 분은 본래 하나님이셨으나, 종의 형체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빌립보서 2장 6-8절「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교회 신도들은 대부분 삼위일체의 사상을 믿는다.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지 않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14장 19절「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마가복음 6장 40절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누가복음
9장 16절「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톤 우라논)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며,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고, 열두해 혈루병으로 고통을 받던
여인이 병에서 벗어나며, 바람을 잔잔하게 하시고, 손마른
자, 중풍병자, 나병환자를 고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가르치다가 저녁이 된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날이 저무는데, 저들에게 뭣이라도 먹게 해야되지 않느냐면서 여쭐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제자 중 하나(빌립)가『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반응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6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신 분이었는데, 빌립은 인간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백 데나리온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만, 그 믿음이 자신과 하나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곳에 왔던 사람들에게 인식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백성들이 생각하기에 저 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표면적인 사건으로서 제자들의
믿음 약한 것과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끝나면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6장 38절에서『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그런데, 요한복음 6장 9절에서는『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이와 보리떡 다섯개, 물고기 두마리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는
율법에 갇혀 있어서, 천국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를 상징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개는 모세오경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에 갇혀있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말이다. 물고기 두마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죄의 몸을 가지고 세상에 온 첫사람 아담, 그리고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할 마지막 사람 예수님이신 것이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는 율법이라는 아이로부터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께로 넘어오게 된다. 이 말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복음이 되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죄인이 대속의 어린양의 죽음으로
죄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은 장차 오실 여인의 후손인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인들은 죄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게 약속의 씨에 대한 열매맺는 것이다. 씨로 있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지만, 씨가 죽으면(십자가의 죽음) 생명의 열매(부활)를 맺는 것이다.
아이로부터 받은 오병이어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의 복으로 내려온다.
죽어야 할 육을 일시적으로 살리는 떡 대신에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떡(부활)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아이로부터 받은 오병이어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의 복(생명의
부활)로 다가올 것이라는 메시지다. 마가복음 6장 43-44절에서『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떡을 먹은 남자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를 상징한다. 천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천년왕국이라고 했을 때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오(5)는 하나님 나라를 완전히 이루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그
분을 따랐으나,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또한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다고 한다. 계속 열두 제자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져야 함을 말해준다. 열두 제자이지만, 이는 상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적 십자가의 죽음과 현재적 부활을 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15장 13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호 우라노이스)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하늘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아버지, 또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하늘
아버지가 심는 것은 말씀이다. 구약시대는 율법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아니라, 인간들이 전통으로 만든 것은 다 뽑힐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이를 본 바리새들은 신랄하게 비판했다. 율법에는
문자로 기록된 성문법과 모세 이후에 장로들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전통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율법 이상으로 중요시했다.
이스라엘은 사막지대인데다가 바람이 많고
또 건조하여 먼지가 많이 날려서 몸을 씻어야 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정결한 몸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자 함에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손을 씻는 것으로 마음이 정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열심히 손을 씻는 만큼 마음은 정결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다.『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그들은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
그들이 전통으로 계명을 어긴 구체적인 예는
고르반이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림』이란 뜻인데, 이는
하나님께 드린다는 미명 아래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은 것이다. 『고르반』 하고 선언하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이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제 1-4계명을
기초로 하나님을 어느 것보다 더 사랑하고 경외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르반을 이용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을 어겼다. 그들은 부모님을 섬기고 싶지
않으면 고르반 하여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부모님을 섬기지도 않았다. 하물며 반드시 갚아야 할 돈도
고르반 해놓고 갚지 않았다.
그들의 문제는 외식이었다. 외식이란 연극 용어로, 배우나 광대란 뜻이다. 배우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쓰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여 작중 인물역할을 한다. 즉 외식이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일컫는 용어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보면 장로들의 전통을 좇아 부지런히 손을 씻고 목욕하고 그릇을 깨끗하게 씻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그러나 그 내면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말을
더 가르치는 인본주의자들이었다. 로마서 2장을 보면 이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들은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지만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했다. 그들은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씻지만
마음에는 온갖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종교 지도자들의
가식적인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다시 불러 말씀하셨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바리새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는 것은 뽑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선적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타협하거나 상종하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제자들이 아직 분별력이
없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구덩이에 빠뜨리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만든 교리다. 이 교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성경의 내용과 다른 것이 많이 있으며, 전혀 성경과 다르게 해석한
것도 있다. 이외에도 교회 공동체가 자체적으로 만든 규칙이나, 절기가
있으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장로나 권사의 직책에 임명되면 은밀히 자행되는 관행이라든가, 전통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불에 타버리는 지푸라기에 불과한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7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호
우라노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빌립보 가이사랴는 곳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헐몬산
기슭에 위치한 곳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의 왕이었던 헤롯 대왕에게
아들이 여럿이었는데, 그 중 하나인 헤롯 빌립이다. 그가 그곳에 도시를 만들고 로마 황제의 칭호인 가이사를 따서 가이사랴라고 하고, 자기 이름도 집어넣어서 가이사랴 빌립보 라고 이름을 지었다. 빌립이라는 이름은 그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 황제의 칭호가
붙었다는 말은, 이 가이사랴 빌립보가 외형적으로 엄청나게
웅장한 모습을 갖춘 도시였으며, 황제를 위한 신전도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로마 황제의 도시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온 것이다. 예수님과 또 갈릴리 시골사람이 대부분인 제자들은 이런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주 초라하고 형편없는 모습이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이 황제의
도시, 화려하고 엄청난 로마의 영광을 자랑하는 이 도시에 제자들과 함께
오신 것이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훈련을 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예수님이『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제자들이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또는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언급한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선지자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다. 그 동안 예수님이 하신 일들과 가르친 말씀의 내용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틀림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선지자라고 생각했지 메시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기 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도는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당시 로마는 팍스 로마라는 기치 아래 정복
전쟁을 펼쳤다. 무력으로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여 평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로마가 추구하던 것은 강한
힘이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대단한 믿음의 말이다. 이것을 알게 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구원과 직결되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16장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라고 말했음에도, 베드로가 사탄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28-32절『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항상
함께 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맡긴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특히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이전의 이름인 시몬이라고 부른다. 사탄이
넘어지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돌이켜서 형제들을 굳게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처럼 물 위로
걸었다. 다른 제자들은 보고 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 만을
바라보게 되면, 에수님처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이 육신으로는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물
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육은 어느 순간『믿음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삼년이 지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셨다.『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사탄이 욥에게 하였듯이 베드로에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그 때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의심하지 않고 대답하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를 부인했다. 철저히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는 베드로였음을 나타낸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다. 육적인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후에 사탄의 시험을
받은 것처럼, 모든 신도들도, 세례받은 후에 사탄의 시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도의 마음에는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이 있으며, 육의 마음은 넘어지게 하는 마음이고, 영의 마음은 세워주는 마음이다. 성령이 주는 마음을 붙잡지 않으면, 다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9절「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톤
우라논)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8장 18-19절「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엔
우라노)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엔
우라노)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16장 19절은 문법적으로 복수의 하늘이고, 성도의 심령 속의 천국을 의미한다. 18장 18-19절은 단수의 하늘로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로부터 점차적으로 영적인 하나님 나라로 확산되는 것을 보여준다.
땅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하늘에서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주셨다. 땅을 상징하는 세상의 권세는 사탄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인을 대속하여 죽으시므로 그와 연합되는 자도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
죽은 성도는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천국의 열쇠는 바로 복음과 같은 의미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땅에서 푸는 것이고, 부활은 하늘에서 푸는 것이다. 신도가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지 않으면, 땅에서 매인 자가 되는
것이고, 부활과 연합되지 않으면 하늘에서도 매인 자가 되는 것이다.
성도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했는데도, 이를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매여있는 자가 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은 죽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만 믿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날마다 죄를 용서받고 예수의 피를 요구한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부활에 대해서도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죽고
영이 영의 몸을 입고 살아는 것인데, 이를 믿지 않고, 또
육체가 죽어서 부활한다고 믿는 자들은 여전히 하늘에서 매여있는 자들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역자들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29-36절「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톤 우라논)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장 25절「별들이 하늘(투 우라누)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가복음 14장 62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투 우라누)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가복음
13장 27절「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헤오스 우라누)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가복음 13장
32절「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엔 우라노)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6장 64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투
우라누)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가복음 14장 62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투
우라누)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그 날과 그때는 종말 때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는 그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에 예수님이 임재하는 그 때를 의미한다. 성도가 세례를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믿어도, 곧 바로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받으라고 훅 불어넣어 주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는 때가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 종말 때에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다 알게오신다. 예수님이 심판자로서 오시는 것이다. 그러나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은 택한 자의 심령 속으로 재림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하늘의 징조라는 것은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셨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징조가 나타날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예수님이 심령 속의 재림 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그 상황을 노아의 때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그러나 무화과 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은 극히 적은 수만 그렇게 되고, 모두 열매없는 빈가지만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노아의 때, 노아는 120년간
회개를 외쳤지만, 그 가족 일곱 명만 구원받았다고 전한다.
예수님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재림하실 때 메시야 왕국(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다. 성경에서는 이를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예수님이 직접 성도를 통해서 영적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천국이며, 셋째 하늘이며, 에덴의 회복인 것이다.
마가복음 16장 19절「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톤 우라논)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누가복음 2장 15절「천사들이 떠나 하늘(톤 우라논)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톤 우라논은 하늘 나라(천국)로서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과 같은 개념이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엪우라노이스)에 앉히시니」
따라서 하늘로 번역된 톤 우라논(엪
우라노이스)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며, 성도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함을 믿을 때, 그의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나, 천사가
하늘로 올려지는 것을 보는 것은 바로 제자들의 눈을 통해서이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들의 심령
속에서 나타나는 천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천사는 하나님 우편에 있지만,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권능이 시작되는 하나님 왕국의 일체됨을 나타낸다.
하나님 나라는 성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성령으로 연결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성부하나님을 첫째 하늘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데, 이를 둘째 하늘로 볼 수
있으며, 성도는 셋째 하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인 그런 개념이 아니라, 성령으로 연결된 통치의 개념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하늘에 대해서, 보좌에 계신 성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아무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서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둘째하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영의 몸을 입고 임재하시는 아들의
나라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누가복음 24장 39절에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골로새서 1장 12-13절에서『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셋째하늘은 에덴동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셋째하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하늘은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그래서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33절「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6장 20절「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엔
우라노)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누가복음은 문법적으로 복수 하늘이고, 마태복음은 단수 하늘이다. 복수하늘은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것이고, 단수 하늘은 성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천국이나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제목으로, 어떤 교회에서는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헌금을 많이 하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구약에서『하나님께 무엇인가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멸하여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짐승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몸을 드리는 것은 몸이
하나님 앞에서 멸하여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것은 구별되는 것이다. 구별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것 중 태워지지 않은 것은『연보』라는 창고에 보관하여 구별하였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태우는 것, 즉 죽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의 그림자인 것이다. 십일조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뜻이 들어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 중 불에 태워지지 않은 것들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제사장 등 레위지파 사람들이나, 고아나 과부 등을
위하여 쓰이게 된 것이다.『바친다』라는 말은 구약의 마지막에 끝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개념은 끝난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영이다. 헌금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을 드리는 것은 곧 내가 예수와 더불어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예배인 것이다. 영적
예배는 눈에 보이는 소유물 대신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하나님 나라를 위해 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의 보화 즉 부활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하늘의 보화는 부활생명이다.
죽었던 영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된다. 사람은 영과 육체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육체로 비롯된 것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1장 51절「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톤 우라논)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늘이 열리는 것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천국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창세기 28장 12-19절에서 야곱이 같은 체험을 한다. 28장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야곱은 자신이 누워서 잔 곳이 하늘의 집(벧엘)이라고 표현했다.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올라갔다는 말이다. 이 말이 요한복음 1장 51절과 연계되려면 사닥다리가 인자라는 의미가 된다. 사닥다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는 것이다. 즉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과 연결되는 고리인 것이다.
야곱이 꿈을 꾼 사닥다리는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을 상징한다. 그를 통해서 범죄한 천사들의 영이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만들어진 남녀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만들어주고,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인자 위에 하늘 문이 열려있어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하늘 문이 열려져 있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이 된다.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부활하여 하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천사들의 영들이 그리스도(첫사람)를 통해서 세상으로 내려가고, 그리스도(마지막 사람)를 통해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올라간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프로토스 무 엔)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여기서 프로토스는 질서적으로 앞선 것을 의미한다. 나보다 먼저 된 자라는 말은 아르케(우두머리)라는 말이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존재했던 분이라는 말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영어성경(kjv)은 『Who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헬라어 성경은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οράτου, πρωτότοκος(프로토토코스:첫번째
태어난) πάσης κτίσεως(크리세오스:창조된),죄의 몸을 만들어서 악한 천사의 영을 가두기 위함이었다.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여기서 인자로 번역된 말의 헬라어를 보면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그 아들 그 사람)이다. 그 아들과 그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내려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첫사람 아담이기도 하고 마지막 아담이기도
하다. 번역을 다시 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곧 그 아들
그 사람(그리스도)이며 하늘에서 내려옴이 없었다면 올라감도
없었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첫사람 아담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이 되셔서 죄의 몸을 영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다시 그리스도가 마지막 아담으로 내려와서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죽는 모든 사람은 첫사람 아담 안에 있는 자이고, 새생명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생령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ψυχὴν(프슈켄)ζῶσαν(조산)으로서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말이다. 첫사람 아담은 생명체인데 죄의 몸을 나누어 주었다. 즉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로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의 몸이 죽고 하늘로 부터 새로운 생명(영의 몸)으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몸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9절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표면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올라가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려갔음을 전제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상으로는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분과 올라가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해준다.
에베소서 4장 10절에서『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창세기 2장 1절에서
만물은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범죄한 천사들)를 의미하는데, 그리스도로 인해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구원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신 그리스도는 첫사람 아담으로서 죄의 몸을 영들에게 주기 위해, 마지막 아담으로서
죄의 몸에 대해서 죽고 구원받는 영들에게 영의 몸을 주기 위해 내려오신 것이다.
히브리서 1장 6절에서 한글개역 개정은『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그런데, 헬라어를 보면 ὅταν δὲ πάλιν εἰσαγάγῃ τὸν πρωτότοκον εἰς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λέγει·καὶ προσκυνησάτωσαν αὐτῷ πάντες ἄγγελοι θεοῦ.밑줄친 부분의 번역이 잘못되었다.『그분께서 그 처음 나신 분을 다시 세상에 들어오게 하실 때에』그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 처음나신 분은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이고, 세상에 다시 들어오는 자는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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