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하나님 나라는 계명 속에 서있는 나라이다.
②하나님 나라는 계명 속에 서있는 나라이다.
요한복음 14장 15절『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Ἐὰν ἀγαπᾶτέ με, τὰς ἐντολὰς τὰς ἐμὰς τηρήσετε·)
테레세테(τηρήσετε) “지키다” 라고 번역된 테레세테의
기본형은 “테레오” 로서 방어선을 지키다, 보호하다, 상태를 유지하다 등의 의미다. 즉 성경의 규정을 행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마음에 새겨 잃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를 문자적 율법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적용시키는데 있다.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마가복음 12장 30-31절『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사랑(아가파오)이라는 말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성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되어 죽었음을 믿고, 함께 부활되어, 영이 살아나므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성령이 주시는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마음 속에 간직한 모든 계명을 생각해보라는
말씀이다. 그 계명에 대해서 성도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에 얽매인 율법주의를
폐한 것이며, 그 속에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랑의 마음으로 행동하게 되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율법주의에 얽매인 자들은 사랑하는 것을 규정과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없으므로, 오늘날
십계명이 다 폐해진 것으로 생각하는 신도들도 있을 것이며, 십계명을 철저히 지켜 나가야 하며, 못지킬 때는 죄를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용서받고 또 계속하여 계명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자는 의미로 받아드린다. 이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예수님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해 주셨는데, 계명의 문자에 얽매여 있으므로 스스로 피곤한 삶을 삶을 사는 것이다. 즉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의 의미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이것을
율법주의적으로 지키느니 마느니 말하는 자들은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계명을 마음에 간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의 마음으로 재해석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단을 배척하면서도, 스스로 잘못된 교리를 말하거나
헬라어 성경과 다르게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자가 있다면 그게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십계명의 규정은 하나님이 이 땅의
일을 통해서, 인간들의 영적인 상태를 깨닫게 해주시며 회복해야 할 영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십계명을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반드시 그 규정에 맞게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께닫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도들은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열가지의 항목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어떻게 영적으로 깨어나서 밝은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는가를 고찰해야만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2절『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애굽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시내산에 이르러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다. 출애굽기 20장 2절에서 언급된 내용은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두 돌판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상당한 기간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된다.
출애굽기 32장 1-4절『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래서 모세가 산으로부터 내려와서 우상을 섬기는 백성을 보고, 하나님이 주신 두 돌판을 깨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4장 1절에서 말씀하셨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처음 두 돌판과 두번째의 두 돌판은 제2계명의 내용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다.
출애굽기 20장 4-6절『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네게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
20장 8절을 다시 번역하면, “너는 너를 위하여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이나 물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과 같이 하늘 안에 형상을 만들지 말며” 하늘은 눈으로 보는 하늘(sky)이 아니라, 마음 속의 하늘 나라이다. 하늘 나라를 생각하면서 형상을 떠올리면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신명기 5장 8-10절『너는
네게 어떤 새긴 우상이나,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도 만들지 말며,
………』
5장 8절을 다시 번역하면 ”너는 너를 위하여
땅에 있는 것이나 물 안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이나 하늘 안에 대한 형상을 만든 것과 같이 만들지 말며”이다.
처음 돌판은 땅이나 물안이나 위에 있는 것과 같이 하늘 안에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두번째는 하늘 안에 뿐만 아니라 땅이나 땅 아래 물 안이나 물 안에 있는
것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 것은 마음 속에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두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같이 어떤 형상이나, 마음 속에서도
형상을 만들지 말하는 것이다. 형상이 마음 안이나 마음 밖의 눈에 보이는 것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만큼 우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마음 속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인간들 각자가 하나님을 자기 생각에 맞게 이미지화 하는 것이다. 농경사회나
가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풍요를 주는 분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상징적으로 소를 하나님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발전해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두번째 돌판은 실제 보이는 동식물을 대상으로 인간들이 이미지를 확대한 것을 우려한 것이다.
신명기에서 작성된 십계명은 가나안 입구에서,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냈는데, 열정탐꾼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다
죽는다 라고 보고하고, 그 말을 들은 모든 백성이 통곡하며 울었다.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돌게해서 다 죽게했다. 두명의
정탐꾼이었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과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아이들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이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지난 1세대 백성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마음에 새기라는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지키고 보호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며, 그 말씀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제 일 계명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신을 섬긴다. 사람들이 신을 만드는 이유는
두려움과 생명의 원천인 식량의 확보에 원인이 있었다. 출애굽 당시 애굽에는 열가지 재앙만큼 자기들의
신이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마음에 품는 이유는 자신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에서 대상을 찾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미신이 성행하는데, 바다에
가면 바다의 신, 산으로 가면 산신, 천둥이나 번개 속에서
천둥의 신,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신, 풍요와 축복을 주는 신을 찾고 의지하는 것이다.
유일신은 스스로 있는 자이신데, 고대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이 불렀던 아도나이, 야훼, 각 나라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번역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만,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따라 유일신인가 다른 신인가 구분된다.
사람들이 믿는 다른 신은 축복을 주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건져주실 것을 믿는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스마엘과 이삭으로 나누어지는바,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자기들이 믿는 알라가 참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그들도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야곱)의 후손들과
이스마엘 후손들이 서로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 세상에 오신 후에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자신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로 갈 수 없다고 선언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외에는 모두 다른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모든 세상의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오늘날 기독교 단체가 삼위일체를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고, 그렇게 믿는 자들이 대다수이다. 이들도 또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은
너희들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인간들이지만,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 모든 자들은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이라고 동일하게 부르지만, 서로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제 이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 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 를 베푸느니라.
제 이 계명은 신명기 5장 8-10절의 내용으로, 우상에 대한 내용이다. 『너는 네게 어떤 새긴 우상이나,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도
만들지 말며, ………』마음 속에 있는 하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지 말고, 땅이나 물 속이나 물 위에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교리에서는 우상과 형상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데, 한글 개역개정에서, 출애굽기는 형상으로, 신명기에는 우상으로 번역하였으므로 이에 따른 것으로 보여지나, 히브리어는
둘 다 페셀이다. 페셀은 형상으로서 마음에 있는 형상은 이미지로, 눈에
보이는 형상은 새겨 만든 우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모세가 두 돌판을 깨어버린 이유는 백성들이 하늘(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금송아지라는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 속의 이미지이던 실제 눈에 보이는 형상이든 새기지 말라고 포괄적으로 명령한 것이다.
형상(Image)은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 그리는 것인데, 사람 마다 자기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이미지화 한다. 오늘날에도 신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각각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 복을 주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등의 이미지이다. 결국 신도들은 자기가 생각한 그
이미지를 하나님에 대한 정체성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과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십자가, 예수의 얼굴, 마리아 상, 교회 건물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제 삼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다.
“망령되이” 라는 말에서 통상 신도가 세상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더렵혔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자라는 것이다.
망령되이 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샤브인데, 황폐, 우상숭배, 무익한, 거짓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
말할 때, 자기 생각을 섞어서 말을 하면,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되는 것이므로, 거짓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말을 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와 같은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은 죄인인데,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야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드리지 않았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은 예수이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여기에서
주 예수의 이름(엔 오노마티 큐리우 예수 ἐν ὀνόματι κυρίου Ἰησοῦ)에 대해서, 개역개정은 잘못 번역하고 있다. 다시
번역하면, “주의 이름 예수 안에서” 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13절에서『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예수이다. 주(큐리어서)에서 큐리어스는 헬라어로서,
히브리어로는 아도나이가 된다. 아도나이가 야훼로 불리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주(큐리어스)는
곧 야훼(여호와)가 되며,
여호와의 이름은 예수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은 장차 오실메시야, 예수를 받아드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서 못박아 죽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를 믿는 다고 말을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이다. 예수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만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된다.
제 사계명은 다음과 같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 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장 8-10절에서『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그런즉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안식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의미가 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것은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거듭난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네 계명에서 하나님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의미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알지 못하므로 형상을 만들고 우상을 만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우상들을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너희들은 나를 떠난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던 존재들인데, 흙으로 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셔서,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을 구하려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언약을 맺고,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손자 야곱과도 언약을 이어나가시고, 그래서 애굽에 갇혀있던 백성들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한다는 내용이다. 히브리어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이다.
가나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애굽)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고, 애굽으로부터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데, 예수라는 메시야가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안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안식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의 안식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네 계명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제 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것이다.
제 5계명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중재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에베소서 5장 31-33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사람은 인자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아내라는 여자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떠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공경이라는 말은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회개하는 자들을 그의 품 안으로 넣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된다. 백성들이 영적으로 부모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은 희생제물과 함께 자신들도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30-32절에서 구원을 남녀 혼인으로 비유하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도 표현했다. 남녀가 혼인하는 것 자체가 구원이
아니라, 혼인관계를 통해서 구원의 의미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2-24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여기서는『이러므로』는 원래 하나에서 하와를 끄집어
냈지만, 다시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교회는 성도를 말한다.『너희가 교회라.』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영을 말한다. 성도들 속에 있는 영이 원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는데, 영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창세 전의 비밀이다.
창세 전에 악한 천사의 영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가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들을 흙 속에 가두어버린
것이다. 이제 영들이 다시 살아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 육이 죽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이 살아있을 떼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을 때, 하나님이 다시 영의 몸으로 태어나게 해 주시고, 영이 살아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결혼을 비유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시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이것이 영생이고, 부활이며, 거듭남이다.
제 육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이다.
요한복음 7장 19-20절『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유대인들은 율법을
근거로 예수를 판단하고 신성모독죄로 몰아가는 것이다.
마태복음 26장
64-65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유대인들은 신성모독죄로 예수를 죽게 했으나,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대속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이다.
따라서 살인이라는 말은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보존하라는 율법의 규정을 어기므로 제사장이 율법을 어기는 자를 죽게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1장 12절『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가 살인하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너희들은 모두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너희들은 모두 가인과
같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하나님이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처형된 것을 간주하시겠다는 것이다. 돌로 쳐죽이는 의미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죽은 자도
이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날마다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자들은
예수를 날마다 십자가에 매달고 죽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이루신 일을 믿지 않으므로, 날마다 예수의 피가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서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으로 알려져 있다. 가인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를 상징하고,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믿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자는 가인과 같이 아벨(예수 그리스도)을
죽이는 자라는 것이다.
제 칠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이다.
요한복음 8장 7-9절『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간음한 여자에 대한 처벌에 관한 논쟁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온 목적은 정말 여인의 음행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답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저의가 있는 질문이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잡혀온 여인을 긍휼히 여기시면서
그 여인을 놔주도록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면서 어떻게 율법도 따르지 않느냐고 예수님을 비난할 것이었고,
반면에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율법에 따라 돌로 치라고 하셨다면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사형 선고는 스스로 하지 못하도록 한 로마의 법을 어기게 되어 이 또한 예수님이 공격 당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대답이었다.
유대인 지도자들 눈에 음행하다 잡힌 이 여인은 예수님을 잡아드릴 좋은 미끼가
될만한 사람으로, 죄를 지은 불결한 여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사람들의 눈이 그 여인이 아닌 그 일을 행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셨고, 잠시 후 그 자리에 있던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여인의 죄를 바라보았을 때 율법에서 말하는 것처럼 돌로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여겼지만 막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보게 되었을 때 그 누구도 자신의 죄에 대해 감히 자신이 의롭다고 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땅에 쓰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울리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그들의 심령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도 다른 예수를 믿는 자가 있다면 이는 영적 간음에
해당한다. 다른 예수는 예수라는 이름을 이용해서 장사하는 무리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모습 등이다. 예수님은 신도들의 심령 속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10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은 정죄하러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죄에 빠져있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은 죄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죄 지은 죄인이라고 비난하던 음행한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죄의
대가를 묻지 않으시고, 그녀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음행한
여인은 범죄 현장에서 잡힌 사람이다. 하지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아직 범죄 현장에서 발각되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음행한 여인과 크게 차이
없는 죄인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남의 죄를 판단하고 있으나,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이다.
제 팔계명에 요구된 의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과 거래에
진실, 신실, 공의로움이니 각 사람 에게 당연히 줄 것을
주는 것이며 바른 소유주에게서 불법 점유된 물건을 배상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능력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아낌없이 주며 빌리는 것이다. 이 세상 물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
의지, 애정의 절제이며, 우리의 생명 유지에
필요하고 편리하며 우리의 상태에 맞는 것들을 획득하여 보존하며 사용하고 처리하려는 주의 깊은 배려와 연구이다. 불필요한
소송과 보증 서는 일이나 기타 그와 같은 일을 피하고 우리들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부와 외형적 재산을 구하여 보존하고 증진하기
위해 공정하고 합법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함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는 것이다. 바치는 것은 자기를 드리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하나님께 몸을 드리는 것은 몸이 하나님 앞에서 멸하여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것은 구별되는 것이다. 구별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듯이 성도 역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셔서 거룩한 자로 태어나게 해 주신다.
제 구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이다.
거짓증거란 법정과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실을 감추거나 축소, 변조
또는 과장하여 진실에서 떠난 모든 말과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짓 증거하는 자들은 왜 이웃에 대해서 사실이 아닌데도 거짓증거를 하는가? 그 이유는 탐욕이라는 악한 생각 때문이다. 증언하는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거짓 증언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5장
18-19절『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은 육적 마음과 영적 마음이 있는데, 사람을 더럽게
하는 마음은 육적 마음이다. 로마서 8장 5-7절『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의 마음에 있는 자는 아무리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거짓말하는
것이다. 영의 마음에 있는 자는 성령이 인도하시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증거하게 하신다. 거듭난 성도라고 할지라고, 두가지의
마음이 있다.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이다. 거듭난 자도 영의
마음으로 행동해야 할지 육의 마음으로 행동해야 할지 선택하는 상황이 오는데, 영적 성장을 할수록 영의
마음이 육의 마음을 통제해 나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즉 성령을 의지하여 모든 일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제 십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이다.
민수기 5장 21절『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먼저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하고, 그 다음에
집, 밭, 종, 소나
나귀, 모든 소유로 확대해서 말한다. 탐내다 라는 히브리어
하마드는 즐거워 기뻐하다, 열망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골로새서 3장 5절『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제 십계명은 열번째 라는 의미가 있지만, 계명 전체를 총괄하여
나타내는 의미를 갖는다. 모든 계명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십계명의
의미를 예수님은 새언약으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 사랑은 영적 간음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모두가 영적 간음을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연합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에 연합되려는
것에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웃의 아내를 탐내는 것은 이웃의 아내와 연합하려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영적 간음이다.
마태복음 5장 27-28절『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간음이라는 행동이전에 예수님은
마음의 간음을 지적하고 있다. 음욕은 탐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영적
간음의 시작이 된다. 영적 간음은 우상숭배라는 말이다.
그 다음 이웃의 소유를 탐내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예수님은 이웃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 공동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영적 공동체를 형제라고 표현하고, 형제를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는 것은 영적 공동체를 부셔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는 것은 형제에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파괴자의 모습이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형제가 다른 형제들에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그게 영적 파괴행위가 되는 것이다. 가나안
땅 앞에서 열두 정탐꾼이 돌아왔는데, 열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보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통곡하며 밤새도록 통곡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누룩처럼 순식간에 형제들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을 죽이는 자요, 간음하는 자요, 빼앗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라는 것이다.
십계명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것은
1-4계명이고, 이웃에 대한 것은 6-10계명이다. 6-10계명은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증거, 이웃의 물건을 탐내는 것으로 모두 탐욕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하나님이
탐욕으로 오염된 죄인들에게 너희들은 이렇게 오염된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인간 스스로 이 탐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잇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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