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 하늘)

 

(단수 하늘)

 

마태복음 5 3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토 우라노)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태복음 23 22「또 하늘(토 우라논)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맹세에 대해서 『지키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했다. 그런데 민수기(30:3-16) 에서 『미혼여자의 서약은 아버지가, 아내의 서약은 남편이 그 유효성 즉 준행할 의무 여부를 최종 결정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율법은 인간의 판단 착오나 어리석음으로 맹세를 잘못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레위기 5 4-6절에서『혹 누구든지 무심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구약의 맹세에 대한 가르침은 누가 봐도 합당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하지 말라고 했으며, 심지어 악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맹세 자체를 무조건 금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위선적 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자기들 편리한 대로 악용하는 잘못된 습관을 당장 그만 두라는 뜻이었다.

마태복음 23 16-22절에서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호 우라노)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맹세를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다. 그들은 금과 예물(성전에 바칠 헌물)을 걸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되, 성전과 제단에다 대고 말로서 한 맹세는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예물보다 제단이, 성전과 제단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고 말했다. 모든 맹세는, 돈을 걸었든 말로만 서약했든, 결국 하나님께 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맹세라도 최선을 다해 지켜야지 맹세 중에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하늘(호 우라노)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하늘을 하나님의 보좌라고 말한다. 어떤 맹세라도 모두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유대 랍비들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두 번 이상 같은 대답을 하면 맹세라고 간주했다. 맹세란 하나님께 자원하여 무엇을 드리려 서약하든지, 사람들 사이에 계약을 지키려는 보증이든지 간에, 모든 종류의 약속을 잘 지키겠다는 결의를 내비치는 행위이다. 계명이나, 서원이나, 약속이나, 계약이든 간에 진정성과 성실성을 갖고 대답을 했다면 맹세인 것이다. 예수님의 뜻은 말로든 물건이든 보증할 필요 없이 무슨 약속이든 성실히 지키기만 하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이 맹세에 대해 가르치는 근본 의미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만 거창한 대상이나 물건을 동원해 맹세하는 것은 상대를 속이려는 잘못된 의도가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 43-45「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엔 우라노이스)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죄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원수가 된다. 그 이유는 죄인 속에 있는 천사의 영이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회개하게 하여 구원하는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어떻게 온전할 수 있는가?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으며, 온전하지 못하면,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된다.『내가 원수를 사랑해야지』라고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거듭난 몸으로 바뀌어야만 되는 일이다.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박해하는 자를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영의 구원때문이다.

히브리서 12 4절에서『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거듭남은 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주신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히는 삶을 갈 뿐인 것이다. 그리고 죄악과 싸워 피흘려 승리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으며, 영의 구원을 위해서 그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악한 천사의 영들을 물질세계에 두었다.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다서1:6),『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베드로후서 2:4)

바로 영을 가둔 곳이 흙속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된 것이다. 흙속에 갇힌 영은 죽어버렸으며, 육체로 비롯된 마음이 육체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성경은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인간의 범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있었던 사건을 설명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 살아나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요한복음 6 63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영에 대해서 설명하신다.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그러나 육체 속의 영은 다 죽어버렸다. 왜냐하면 영은 흙속에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하나님은 방법을 알려주셨다.『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니고데모라는 사람과 대화할 때, 요한복음 3 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물은 몸의 죽음을 상징하고, 성령은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흙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영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는『인간은 악으로 오염된 영이 갇힌 존재』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하나님께 악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악인임을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이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을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 그 약속은『현재의 죄악된 몸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못박힌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이다. 이게 세례의식이다.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6:4)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뀐 것을 믿는 것이다. 신령한 몸으로 태어나게 되면 영이 살아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나라의 옷을 다시 입게된다. 사도바울은 옷을 몸으로 표현했다.『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린도전서 15:44) 그는 몸을 집으로도 표현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린도후서 5:1), 육체가 죽으면 하나님나라로 들어가 천사와 같이 된다.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태복음 22:30) 그러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면 심판을 받게된다.

 

마태복음 7 9-11「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토이스 우라노이스)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엨크 우라누)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마태복음 711절에서는 복수 하늘, 누가복음 1113절에서는 단수 하늘로 사용되었다. 복수 하늘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누가는 장차 가게 될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마태는 지금 현재 임할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있다.

성도가 구하는 것인 임마누엘 신앙이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구하라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구하라는 것이다. 성도가 성령을 구하는 것은 성령 충만이다.

성령세례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성령(보혜사)내주하며,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성도가 복음을 전할 때나 삶에서, 성령(또 다른 보혜사)이 힘을 주고, 도우며, 기억나게 하시고,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성도의 옆에서 활동하신다. 그리고 성령이 떠나가기도 한다. 심령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떠나가지 않으신다. 보증으로 성도를 구원받은 자로 인증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6 4-11절에서『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네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니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예수님이『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셨다. 성령이 오시면 기억나게 하고, 깨닫게 해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 26절에서『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했다.

 

마태복음 11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헤오스 우라누)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누가복음 1015가버나움아 네가 하늘(헤오스 우라누)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예수님은 가버나움과 벳세다에 대해서 심판의 말씀을 경고로 하셨다. 두 지역은 예수님의 고향과 가까운 곳이다. 고향에서 예수님이 배척당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무시했다. 무시하는 자들은 이와 같이 심판을 받을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마가복음 63-6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에스칸달리존토  아우토)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육의 눈으로 바라보면 배척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바라보면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를 배척하다 라는 헬라어 에스칸달리존토  아우토  장애물에 걸려넘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장애물은 육적 눈이다.그들이 예수님의 육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겼다. 여기서 『이상히 여기셨다』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을 보면 『에다우마젠』이라는 단어인데, 마가복음 5 20절에서 군대 귀신 들렸던 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을 받은 후에 데가볼리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전하였을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겼다』라고 했는데, 그때 쓰인 단어와 동일하다. 데가볼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해 기이히 여길 ,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께 데가볼리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였다. 데가볼리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해 기이히 여겼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의 완고한 불신을 이상히 여기셨다.

 사건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중요한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 자신들도 앞으로 직접 전도 사역을 감당할 때에 이런 배척을 경험하게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번째로 고향 나사렛을 떠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을 떠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셨다. 나사렛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촌을 돌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후에 고향 나사렛 주변의 모든 마을을 돌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부르사 둘씩 둘씩 전도 여행을 보내셨다. 이러한 내용들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드릴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태복음 12 50「누구든지 하늘(엔 우라노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8 14「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엔 우라노이스)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말은 이 세상()과 대비되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세상에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의 뜻은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회개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하나님이 스스로 아들이 되셔서 세상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다. 하나님이 스스로 아들이 되신 이유는 아들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고 성도가 되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계시되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도 역시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라고 부른다. 만일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이미 그는 다른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하는 죄인들을 하나님 아들로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간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천국)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자가 되도록 만들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 1-3「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투 우라누)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호 우라노스)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호 우라노스)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가복음 811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투 우라누)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누가복음 1116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우라누)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여기에서, 호 우라노(우라노스)는 공중의 하늘(sky)에 해당된다. 표적이라는 것은 그 어떤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뜻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적은 회개하는 자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다가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 때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갑자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고 배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사경을 헤매면서 뱃사람들은 하나의 지혜를 짜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찾자는 것이다.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걸렸다.

그때에서야 요나는 자신의 죄를 고백했지만, 그는 바다에 빠뜨려졌다. 그래서 거치른 풍랑은 즉시로 멈췄다. 깊은 물에 빠진 요나,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해 두셨다. 그리고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 요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밤낮 사흘을 지냈다.

그 뱃속에서 요나는 크게 회개했다. 그래서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냈으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고하며 회개를 외쳤다. 그런데, 요나의 말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크게 회개했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길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야말로 대각성의 회개가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장차 무덤에서 일어나실 주님의 부활처럼, 거듭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당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깨닫지 못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회개는 커녕,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마태복음 18 10「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엔 우라노이스)에서 하늘(엔 우라노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 라고 다투는 것을 두고 어린아이의 예화를 말씀하셨다. 어리다는 말은 작은 자를 의미하며, 크지 않다는 말과 통한다. 어른들 처럼 서로 상대방보다 높거나 크게 되기 위해서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상대적으로 높고 큰 그런 자가 가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31절에서『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만에 부활한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깨닫는 자들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세상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심에도 누가 크냐 라고 논쟁을 벌렸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가복음 937절에서『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그리고,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과 동일하게 영접한다고 표현했으며, 심지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한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또한 어린아이는 믿음에서 실족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914절에서는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한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도대체 어린아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부모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와 같이 신도 역시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예수님은 천국이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천국은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곧 심령 속의 성전(포도원 비유)이다.

첫사람은 그리스도로서 성전을 의미한다. 첫사람은 그의 몸에서 갈비뼈가 분리되므로, 남자(아담)와 여자(하와)로 분리되어져, 죄의 몸이 된 것이다. 분리된다는 것은 죄를 상징한다. 그리고 죄의 몸에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담겨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성전이 세워져 있는데, 어린아이를 통해서 첫사람의 성전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심령 속 성전이 첫사람의 성전으로 되기 위해서는 옛성전은 무너지고, 하늘로부터 오는 새성전이 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에 대해서, 영접하는 자의 심령 속에도 첫사람(그리스도)성전이 세워져 있음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린아이는 믿음에서 실족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이다. 신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연합하여 현재적으로 부활됨을 믿지만, 이를 전하면, 핍박받을 것이다. 핍박받으면 마음의 고통이 심하다. 아직 영적으로 아직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성도 역시 예수와 연합하여 죽어야 하는데,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영적으로 어린아이, 작은 자라고 하지만, 천국에서는 큰 자로 여기신다는 말이다. 자기를 낮추는 자,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

천사는 원래 하나님을 보좌하는 자들이나, 악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육체 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여, 돌이킬 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게 부활이다. 비록 육체는 세상에 있을지라도, 그들의 영은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경배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1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엑크 우라누)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마가복음 11 30-31「요한의 세례가 하늘(엑크 우라누)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우라누)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이 질문은 바로 앞에 21 23-24절의 질문과 연결된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 하는 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요한을 보내셨다는 말이다.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으로 세상에 온 자라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을 바리새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 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를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아니라고 말을 하면,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원과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다. 심령 속에 성전을 두시고, 하나님은 나가셨는데, 백성들이 열매를 맺지 않고, 오히려 세를 받으러 오는 자를 능욕하고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 까지 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비유하면서 버린 돌이 건축자들의 모퉁이 돌로 되었다고 말을 한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2 7절에서『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지만,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는 버린 돌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받아 흩어져  버렸다. 열매는 이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의 열매를 맺는 자들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지만, 예수를 받아드리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 던져저 깨지는 돌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3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호 우라노이스)에 계신 이시니라」

하나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 즉 세상이라는 이 땅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관리권을 허용하신 것이다. 이 땅은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 보면 감옥과도 같은 곳이다. 범죄한 천사의 영이 갇힌 곳이 이 땅이라는 말이다.

베드로후서 2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심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심판이며, 이미 심판받은 자이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 나라에 앉히심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받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 심판자가 되신다.

성도의 심령 속에 천국이 들어서면,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장차 육체가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육체가 살아있을 때 천국을 경험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강도가 죄우편에 있었는데, 우편 강도는 예수님께 간절히 자신을 구원하시기를 원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누가복음 23 42-43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우편 강도가 죽기 전에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그 날 이루어진 것이다.

낙원이라는 말은 바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 곧 잃어버린 에덴을 의미하며, 사도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이 된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됨과 동시에 낙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살아있는 동안 범죄한 천사의 영들이 만들어 놓은 선악 지식나무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가끔 걸리는 바이러스와 같이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우울증과 같이 성도의 마음을 휘청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약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로 성령을 통해서 치유하라는 것이다. 성령의 빛 만이 이것을 치료할 수 있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이 선악지식나무의 열매는 세상 속에 있는 성도에게 다가가 그 열매를 따 먹으라고 유혹한다. 만일 ㅅ겅도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떠 먹어버리면, 엄청난 사탄의 가시가 기다리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51-5절『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토 프뉴마티)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투 에무 프뉴마토스)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사르코스)은 멸하고 영(토 프뉴마)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얻게 하려함이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음행한 자를 내쫒으라는 것이 바울의 말이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의 권면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음행한 자를 내쫒기는 커녕 교만스러운 당당함과 오만한 허풍만 가득했을 뿐이다. 음행한 자가 힘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에게는 사탄이 기다리고 있다. 사탄의 가시가 육신을 멸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시면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8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엑크 우라누)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하늘은 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데, 천사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천사는 영으로 되어 있는데, 세상에 왔다는 말은 그가 몸을 입고 왔다는 말이다. 그의 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신비한 몸을 입은 것처럼 천사들도 영의 몸을 입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20 35-36절에서"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그리고, 마태복음 22 30"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말을 한다. 천사는 영이다.

고린도전서 1535-38절에서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농부가 씨를 뿌리지만, 장래의 형체를 뿌린다는 것이다. 나중에 씨가 열매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씨를 뿌린다는 것이다. 씨껍질이 죽고(사라지고) 그 속에 있는 씨눈이 자라서 다른 형체로 바뀌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42-44절『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엔 아프타르시야) 살아나며(에게이레타이)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엔 아프타르시야(ν φθορ)는 영생 안에서, 에게이레타이(γερεται)는 일어난다는 말이다. 영원한 생명 안에서 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다시 살아난다 라고 번역하므로 마치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오인하게 한다. 신령한 몸이라고 번역된 소마 프뉴마티콘은 영의 몸이다. 부활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린도전서 15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하이마)과 육(사륵스)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6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갈라디아서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처럼 수많은 성경 귀절을 통해서 영적 부활임을 말해주고 있다. 부활을 정리해보면, 육체 속에 갇힌 영이 죽었는데, 영이 죽은 자 기운데서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육체적 부모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몸(영의 몸)을 입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천사들의 모습은 그들을 대면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천사들을 만날 때 천사들의 첫 마디는 주로 “두려워 말라”였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주의 천사를 목격했을 때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 (마태복음 28:4).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들판의 목자들은 주의 천사가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천사들을 두루 비추자 크게 무서워했다.

다니엘 10 5-6절에서,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마태복음 28 3절에서 예수님의 무덤에 나타난 천사들도 비슷하게 묘사되었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거듭난 성도 역시 새 피조물로서, 하늘에 앉히심을 받은 존재인데, 육체로 인해서 영적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이와 같이 된 존재라는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육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성도는 자신의 영의 몸을 바라볼 수 없다. 그 영의 몸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환상을 볼때도 있는데, 이는 영의 눈을 통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천사를 볼 때, 이는 필요에 따라서 그들의 영적 눈을 뜨게하여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8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엔 우라노)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통일하려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에베소서122-23절에서『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다. 교회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으며, 교회는 성도들의 연합체로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만물을 영적으로 충만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28절에서『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시편85-6절의 내용과 일치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복종하게 하셨지만 그러나 아직은 만물 속에 있는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교회가 있는 것이다. 만물 위 교회의 머리와 만물 안에 교회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위해 그의 군대가 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신다. 이기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 만물의 복종됨을 보지 못하는 것은 군대됨의 교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도가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천사의 영으로 인하여 시작되었으며, 그들을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창세기 2 1-3절「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의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늘과 땅, 모든 군대가 다 이루어지니라 라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각종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드셨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것이다. 일곱째 날에 하늘의 군대와 땅에 있는 군대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과 이 땅에서의 군대(범죄한 영)가 다 배치가 완료되었다는 말이다. 일곱째 날, 하늘과 땅, 모든 군대가 다 이루어지니라 라는 말은 하늘의 하나님 나라와 이 땅의 하나님 나라가 다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말씀이다. 일곱째 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날 안식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안식이 된다는 말이다. 육일 창조를 생각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안식은 하나님이 물질세계에 있는 영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약속의 씨를 두신 것이다. 씨를 통해서 깨닫고 하나님 나라로 복귀할 때, 그 또한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버지가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하고 그것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회개하여 죽은 자같이 되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시는 것이다. 탕자는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한 영들을 말한다. 그러나 회개하여 죽은 자 같이 되어 돌아가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장사지낸바 되었을 때, 영의 몸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의 군대는 안식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세계의 군대는 안식하지 못하고 있다. 안식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면 안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그 안식일을 통해서 백성들이 안식하지 못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 그 자체에 안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므로서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장래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고 믿으면 그것이 안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안식을 주겠다고 표현이시다. 첫째를 포함해서 여섯째 날은 세상에 대한 날이다. 사람의 일이 끝나는 날이 여섯째 날이 된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가 안식하는 것이다. 안식이 왔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안식에 있으며, 만물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951-55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투 우라누)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받은 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 멸하는 심판의 권세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꾸짖었다. 심판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에게만 위임하신 것이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위임한 것은 아니었다.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온 예수님 일행을 배척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절기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무리들이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가시다가 사람들을 미리 사마리아의 한 마을로 보내셨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인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사마리아 땅이 아닌 요단 동편의 베뢰아 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거할 숙소와 식사 준비를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그들은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적대적인 유대인들이 많아 그들을 피해 조용한 사마리아 길을 택했지만 그 곳에서도 거절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예수님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거절한 아주 모욕적이고 적대적인 행동이었다.

여기에 분노한 우레의 아들들 즉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이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마치 전날 만났던 갈멜산의 엘리야를 연상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셨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는데, 제자들이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불과 칼, 피와 살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시며 가르치고 계셨다.

 

누가복음 9 57-62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첫 번째,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지금 당장에 따르겠다고 했으나 주님은 그 길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길인지 알려주신다. 집도 머리 둘 곳도 없는 주님을 따르는 것은 확고한 결단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임을 상기시키시고, 주님을 따르지만 가족과 마지막을 보낼 시간을 달라는 자에게는 세상에 미련을 두는 자는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곧 떠나게 될 것이라는 책망을 하셨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친히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다. 그는 주저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장사하고 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는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유혹을 피하고 어떤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말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018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투 우라누)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늘은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한다.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사탄에게 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칠십인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끝내고 예수님께 돌아왔을 때 그들은 모두 다 기쁨에 넘쳐 있었다. 그것은 "주의 이름" 앞에서 귀신들도 꼼짝 못하고 항복하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것처럼만 보였던 귀신들이 자기네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명령만 하면 당장 도망쳐 버리는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벌어졌으니 그들이 그처럼 신이 났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쁜 보고를 들으셨을 때『사단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나도 보았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칠십인들의 전도활동에 의하여 사탄이 곳곳에서 패배당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보고 계셨다는 의미다.

칠십인의 전도활동은 언뜻 보기에는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 시골 동네들을 돌아다니며 몇 마디 말을 전하고 몇 사람 병 고쳐 주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에 있어서 그들의 전도는 사탄을 곳곳에서 격퇴시키는 엄청난 승리였다고 예수님께서 크게 칭찬해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번개가 땅에 떨어지는』것처럼 사단이 급속도로 추락하게 되는, 실로 압도적이고도 명백한 승리였던 것을 말해주신다.

그 제자들의 기쁨에 그렇게 공감해 주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또한 더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도록 상기시켜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여기『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말은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얻게 된다.』는 말과 비유적으로 이어진다. 즉 귀신을 쫓아낸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원수의 힘을 압도할 권세를 주는 것이다.

그런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결코 제자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부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의 지배 권세를 사탄에게 주었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사탄의 권세가 예수님에게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사탄의 권세에서 예수님에게로 전환되므로, 사탄이 고소할 권한이 없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서 성령의 법으로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로마서 8 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요한복음 650-51이는 하늘(투 우라누)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투 우라누)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투 우라누는 단수 하늘로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부활생명은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께서 해주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이 부활생명이 성도의 심령 속으로 전해지면, 성도가 살아있는 동안에 영생의 몸을 가진 것이 된다. 육체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난 영이 영의 몸을 입고 하늘에 앉히신바 되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주린 배를 채운 백성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수소문하여 가버나움까지 배를 타고 뒤쫒아 왔다. 이들에게는 먹는 것이 심각하고 현실적인 문제여서 조심스럽게 예수님께 접근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속마음의 의도를 다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많은 이적을 베푸셨다.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병든 자를 낫게 하시며, 귀신을 내어 쫓았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주린 사람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다. 또 풍랑과 바람을 잔잔케 하시며 물위를 걸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처한 형편과 상황을 불쌍히 여기셨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하셨다. 고통 속에 매여 있는 그들을 낫게 하고 자유롭게 해 주시고자 하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기적을 베푸셨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보면서 마치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이런 현실의 문제에 계속 매여서 영생하는 하늘의 양식을 찾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세상에 속한 썩어져 없어질 것들을 찾다가 주님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베푸신 궁극적인 이유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죄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두려움과 염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부활생명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오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바라보시고 그들이 표적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찾아 온 것임을 아셨다. 그들은 또 다시 표적과 기적을 바라고 한번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육신의 양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찾아왔다. 예수님은 양식의 문제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들의 육의 양식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리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도 그들이 땅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얻고자 한다면 결코 주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이 보내신 자요 영생을 주시는 자시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위해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이 말씀에 무리들은 예수님께 다시 되묻는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 묻는다. 이들의 질문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 외에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몰랐다. 백성들이 질문한 하나님의 일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복수로 표현되었다.『어떤 일들을 해야 영생을 얻는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떤 많은 일들이 필요합니까?』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썩어져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부활영생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일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믿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하늘의 부활생명을 주는 자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내신 분으로,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죽었던 영을 죄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가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백성들은 다시 질문을 했다.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떤 표적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모세는 40년간을 만나를 내리도록 해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였는데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라면 얼마나 더 큰 표적을 볼 수 있겠느냐?”라는 것이다. 이들은 만나의 기적 또한 육신의 양식이 해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어, 그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문제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표적을 구하는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영원히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영의 양식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참 만나인 부활생명의 떡이므로 자신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나 육체는 썩어 땅에 묻힌다. 그러나 영은 구원을 얻어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믿어 부활 영생하라는 것이다. 믿는 것이 영생을 얻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들을 믿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고 현재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요한복음 1228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투 우라누)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육체로 오셔서 그의 이름을 예수라 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다.

마태복음 2818-20절『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이시다. 요한복음 17 6절에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아들의 이름으로』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성령의 이름으로』성령도 이름이 있는가? 성령은 영으로서, 히브리어는 루아흐, 헬라어는 프뉴마, 영어는 (홀리)스피릿, 한글은 성령으로 불린다. 요한복음 1416절『보혜사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따라서 성령의 이름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아들의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말을 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없는 세례는 온전한 세례가 아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속에는 십자에서 죽으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 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래서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어 죽은 자임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의식인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1. 유사한 내용을 하나님 나라와 천국으로 다르게 표현한 부분

3. 복음서의 천국에 관련된 것

하나님 나라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