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복음서의 천국에 관련된 것

 

3. 복음서의 천국에 관련된 것

 

마태복음 31-2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메타노에이테)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 가까이 왔느니라(엥기켄) 하였으니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천국인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누리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메타노에이테(μετανοετε)는 메타(뒤에)와 노에이테(기본형 노에오:마음)의 합성어로서 마음을 뒤로 돌리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마음을 뒤로 돌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자기의 의를 쌓는 것이다. 죄에 대한 회개를 말할 때, 죄를 지은 것을 반성한다는 의미가 되지만, 회개에 담긴 큰 의미는 죄를 짓게 하는 탐욕의 마음으로부터 돌이키라는 것이다. 엥기켄은 바로 옆에 있다는 의미다.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을 천국(하늘 왕국)이라 번역했는데,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천국은 한자어로서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늘 왕국이다. 천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드디어 세상에 등장하였으니 회개하여 모두가 천국이 되라는 말이다.

관사없는 단수 우라논은 눈으로 보는 하늘이다. 관사가 없는 복수 하늘은 세상의 교회를 의미한다. 관사가 있는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고, 관사가 있는 복수하늘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세례요한은 마태복음 3 6절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왔다고 증거할 정도로 세례요한은 인정받고 있었고, 명성도 드높았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때였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증언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 부르심을 따라 살았다. 사람들이 혹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실 그리스도이신지를 궁금해 하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요한에게 보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앞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거하는 자며, 자신이 주목을 받을 자가 아니라 그 주목을 하나님의 아들께 드리기 위해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회개를 외치는 것이다. 천국(예수 그리스도)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오시자 세례 요한은 고백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리고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았으나, 자신보다 먼저 존재하신,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심을 알았다. 요한은『내 뒤에 오시지만 나보다 앞선 분이 바로 이분이시며 예수님께서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또 증언한다.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죄의 문제)를 베풀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이 내려 머무는 사람을 보면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부활) 베푸는 이인 줄로 알라 하셨고, 그리고 내가 보니 성령이 예수님 위에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머물렀다고 고백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라고 증언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십자가의 죽음), 성령이 그 위에 머무시는 분,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 베푸시는 분(부활의 첫열매) 예수님을 증언하며 마침내 세례 요한은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고, 아무도 그분을 모를 때에 그 분의 길을 준비했다. 아무도 메시아가 그렇게 오실 것을 원치 않던 때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을 염원하며 그렇게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였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의지하며 집중하도록 하지 않고, 구약이 예언한 오실 분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께 집중하며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따르도록 하였다.

 

마태복음 4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세상에 대해서 처음으로 자신이 천국임을 밝히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됨도 나타내셨다. 돌성전은 무너져야 할 성전임을 말해준다. 자신의 몸도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마태복음 24 1-2절「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에수님은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몸을 세성전으로 표현했다. 옛성전은 무너져야 할 성전이고, 새성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전을 의미한다. 새성전은 예수님이 성령세례를 주심으로 세워진다. 요한계시록 21 1-2절「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세 예루살렘 성에 하나님의 보좌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장막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칭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돌이켜 하늘로 태어난 자에게 성령세례를 주신다. 물세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개념이다. 형식적인 의식으로서 세례이지만, 영적으로는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다시 태어난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에게 주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소명을 받은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요한복음 133-34『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신도들은 세례를 받는데, 대부분 물세례만 알고 있다. 그러나 불세례와 성령세례를 알고 있는 신도들은 많지 않은 것이다. 불세례와 성령세례는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다. 물세례와 불세례는 죽음을 상징하고, 성령세례는 다시 태어남을 상징한다. 불세례와 성령세례에 대해서,  마태복음 3 11-12절에서『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예수님 자체가 바로 천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제자나 성도에게도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바로 성령세례를 통해서,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 성전에 예수님이 임재하시면, 천국이 되는 것이고, 새성전이 아니라, 옛성전만 있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되는 것이다.

사탄이 주인인 자는 영에 있는 자가 아니라, 육에 있는 자가 되므로, 옥에 갇혀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마태복음 5 19-20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테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14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Ἐὰν γαπτ με, τς ντολς τς μς τηρσετε·) 테레세테(τηρσετε), 지키다 라고 번역된 테레세테의 기본형은 테레오 로서 방어선을 지키다, 보호하다, 상태를 유지하다 등의 의미다. 즉 성경의 규정을 행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마음에 새겨 잃지 않도록 보호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를 문자적 율법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적용시키는데 있다.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율법주의자들은 문자에 집중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2 30-31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사랑(아가파오)이라는 말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성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되어 죽었음을 믿고, 함께 부활되어, 영이 살아나므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성령이 주시는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마음 속에 간직한 모든 계명을 생각해보라는 말씀이다. 그 계명에 대해서 성도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에 얽매인 율법주의를 폐한 것이며, 그 속에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랑의 마음으로 행동하게 되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율법주의에 얽매인 자들은 사랑하는 것을 규정과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없으므로, 오늘날 십계명이 다 폐해진 것으로 생각하는 신도들도 있을 것이며, 또한 다른 신도들은 십계명을 철저히 지켜 나가야 하며, 못지킬 때는 죄를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용서받고 또 계속하여 계명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자는 의미로 받아드린다. 이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예수님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해 주셨는데, 계명의 문자에 얽매여 있으므로 스스로 피곤한 삶을 삶을 사는 것이다. 즉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의 의미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며, 이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이것을 율법주의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계명을 마음에 간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의 마음으로 재해석해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단을 배척하면서도, 스스로 잘못된 교리를 말하거나 헬라어 성경과 다르게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자가 있다면 그게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십계명의 규정은 하나님이 이 땅의 일을 통해서, 인간들의 영적인 상태를 깨닫게 해주시며 회복해야 할 영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십계명을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반드시 그 규정에 맞게 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께닫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도들은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열가지(십계명)의 항목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어떻게 영적으로 깨어나서 밝은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는가를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지키는 자가 마음 속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마음 속의 천국으로 될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신다.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바탕으로 할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다.

로마서 14 17 하나님의 나라(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프뉴마티 하기오) 안에 있는 의(뒤카이오쉬네)와 평강(에이레네)과 희락(카라)이라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ἡ βασιλεα το θεοῦ)는 성부 하나님이 다스리는 특별한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육적으로 먹고 마시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하나님 나라가 먹고 마시는 어떤 율법의 규정에 매여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바울이 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영적으로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덕목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이유는 그에게 부활생명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의인이라는 말은 의로운 행동을 하거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자에게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부활생명이 있는 자인 것이다.

 

마태복음 7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헤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 있는 죄인들을 회개하게 하여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하나님이 스스로 아들이 되셔서 세상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다. 하나님이 스스로 아들이 되신 이유는 아들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고 성도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는데, 빌립보서 2 6절에서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라고 말을 한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가?

첫째,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계시되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도 역시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라고 부른다. 만일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이미 그는 다른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하는 죄인들을 하나님 아들로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간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되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요, 천국이 된다는 말이다.

먼저, 예수님은 세례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으셨다. 마태복음 3 13-15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지만, 이후 제자나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위임한 사람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모든 자들을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이 임하셨다.

마태복음 3 16-17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오늘날 성도들도 이렇게 물에 들어가서 죄의 몸이 죽고(십자가의 죽음), 물 밖으로 나오므로 성령으로 잉태되어 다시 태어나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성령의 이끌림으로 사탄의 시험을 받았다. 마태복음 4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시험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에 대한 시험이다. 오늘날 신도들도 세례를 받은 후에 예수님과 같이 사탄의 시험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믿음을 보신다.

그리고 성도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로마서 6 3-5절『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부활은 죽었던 육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로마서 8 10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승천한 것이다. 에베소서 2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하늘은 톤 우라논으로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게 새하늘과 새땅으로 표현되는데, 이 새성전에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천국)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자가 되도록 만들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8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테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에 앉으려니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증명하는 것이 언약식이다.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약속하셨다. 창세기 26 4절에서『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약속하셨다. 창세기 2813절에서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을 애굽에 400년간 종살이를 시킨 후에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애굽은 세상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왔다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것을 깨달아 하나님께 회개하여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사라의 태가 죽은 것을 알고도 자식을 준다는 약속을 믿었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 바로 믿음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시험하셨다.『이삭을 제물로 바쳐라』는 것이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죽은 후에 부활할 것을 믿은 것이다.

창세기 22 12절에서『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하나님은 이삭으로부터 나온 씨가 약속의 씨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1118절에서『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로마서 9 7-8절에서『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육체를 따라 난자 (이스마엘)는 율법을 나타내고, 약속을 따라 난 자(이삭)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성령)를 나타낸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약속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는 것이다. 율법을 신봉하는 자들이 성령을 따르는 자들을 핍박한다. 오늘날에도, 율법적으로 살면 안된다고 말을 해도, 교회에서 여전히 율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백부장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그렇게 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천국이 된다. 그리스도가 천국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들어가서 그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역시 예수님의 백성으로서 천국을 누리게 된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따르는 자는 구원받지 못함을 말하고 있다. 율법을 문자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전히 율법을 따르려고 하는 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지 못하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지 못한 자들이다.

 

마태복음 10 7「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우라논)이 가까이 왔다 하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그리고 전도여행을 보내시며,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라는 것이다. 이때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육으로 보이는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이켜 메시야이신 예수께로 오라는 것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병든 상태가 된다. 특히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이 그렇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방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했다. 하나님의 언약의 일차적인 대상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전체가 지금 잃어버린 양의 상태였다.

예수님께서 병든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께로 돌이키지를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천국이라고 말을 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결국 천국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말았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천국을 없애버리고,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지옥은 심판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평안을 들고 오는 자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로 듣지 않으면 그 집이나 성에서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했다.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거나 옷자락을 털어 버리는 행위는 심판을 보여주는 행위다. 예수님의 거저 받은 평안을 받지 않으면 그것이 심판인데 이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한다.

이러한 평안의 소식을 거절한 1차 도시가 예루살렘이였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향하여 탄식하신 이유는 평화의 소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거절한 예루살렘이 소돔과 고모라가 된 것이다.

지옥은 교회 사람들이 불타는 지옥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의미가 왜곡된다. 성경에서는 교회사람들이 생각하는 불타는 지옥의 의미가 타르타로, 하데스, 게헨나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첫째, 타르타로 대해서는 베드로후서 24절에『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로)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로 표현되었다. 지옥이라고 표현된 타르타로는 영이 육체 속에 갇힌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므로 지옥에 있는 것이다. 현재적 지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천국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상태를 나타낸다.

둘째, 하데스는 음부를 의미하는데, 음부는 둘째 사망을 나타낸다. 곧음부는 불을 상징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4절에서『사망과 음부(하데스)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음부로 표현된 하데스는 갇히는 지옥의 개념이 아니라, 불을 받는 것이다. 즉 둘째 사망을 나타낸다. 둘째 사망이 곧 불뭇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첫째 사망은 영이 흙에 갇히는 것을 영적으로 첫째 사망으로 본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네크로스)이다. 그리고 둘째 사망은 성령의 불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사망과 음부는 의인화된 표현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9절에서『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불은 두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옛사람은 불세례로 죽고 성령세례로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과 그리고 성도에게 연단의 의미로 주는 불이 있다. 불세례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의미가 있고, 불은 연단의 의미를 갖는다.

최초의 불세례는 창세기 19 24절에서『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소돔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며, 롯과 가족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베드로후서 27절에서『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불세례는 심판과 구원을 나타낸다. 당하는 쪽은 심판이고, 피하는 쪽은 구원인 것이다. 소돔성에 있는 자들은 비진리에 있는 자들이고, 고통당하는 롯은 진리에 있는 자인데, 하나님이 불세례를 통해서 진리에 있는 자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불세례는 옛사람(육적 혼이라는 옷)을 불로 태우고 새사람(그리스도의 옷)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게헨나는 쓰레기를 불로 태우는 의미를 갖는다. 불은 연단의 의미도 갖지만, 연단되지 않는 불은 고통을 주는 불이 된다. 그런데, 게헨나를 지옥으로 번역하므로 의미가 혼란스럽다. 마가복음 947절에서『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게헨나는 성소의 마당에서 희생제물을 잡고 그 동물의 사체를 성문 밖에서 태우는 것을 의미한다. 쓰레기 처리장인 것이다. 예레미야 7 31-32절에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힌놈의 골짜기에서 게헨나가 나타났다. 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밖 남동쪽의 쓰레기 장이었다. 동물의 사체를 태우는 것이다. 사체에서 구더기가 나온다.

마가복음 9 48절에서는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그런데, 힌놈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몰렉에게 자녀를 태워 제사를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성전의 타락을 의미한다. 오늘날을 비유하자면 교회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서 피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타락한 교회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 지옥으로 번역된 게헨나와 타르타로와는 다른 개념이다. 타르타로는 갇혀있는 어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지만, 게헨나는 지옥이라기 보다 불로 태우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쓰레기를 불로 태운다는 의미는 불세례와도 다른 이야기다. 불세례는 구원과 심판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게헨나는 쓰레기를 태우는 의미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혀의 불로 다른 사람을 불로 태우거나,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도 불로 태우려는 것이다. 신도가 자기를 태울 때는 연단이 되지만, 타인을 불로 태울 때는 그야말로 지옥불이 된다. 그는 지옥불에 사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모든 사람에게 현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육체가 죽어서도 연장되는 일이다. 현재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천국이 되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지옥이 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회개하여 불세례(둘째 사망)를 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천국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불로 연단을 받아 더욱 정금과 같이 된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11 11-12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테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이라고 번역된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율법시대는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이 세례요한까지 로서, 이는 심령 속에 세워진 옛성전을 의미한다. 이 옛성전에 주인이 자기라는 우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심령 속에 새성전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믿음의 성도에게 심령 속으로 침노해 들어가, 옛성전을 파괴하고, 새성전에 주인으로 계시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침노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침노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옛성전으로서,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육적 자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심령 속의 성전을 침노하지 못하게 막는 자들이 있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 등 종교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짜 복음을 내세워, 신도들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들을 한다. 가짜 복음이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를 의미한다. 대부분 교회 안에 이런 가짜 복음이 너무나 만연한 것이다.

교회에서는 마태복음 11 12절의 말씀을 성도는 구원을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구원은 각자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몸부림 친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침노할 수 있는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침노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에다가 무엇인가를 더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말은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폭력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폭력자에 의해 옛성전이 파괴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새성전으로 복귀시켰다. 이게 바로 부활인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심령 속의 성전을 다시 회복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역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성도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다.

성도의 역할은 사람마다 세워진 성전을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사탄의 종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사탄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속량은 피값을 주고 산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탄으로부터 죄인들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에 묶여 있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심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옛성전은 사탄에 의해서 침노를 당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들에게 심어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영적 전쟁과 같은 것이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아낙자손들과 싸운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는 것이 그들을 영적으로 살리는 길이다.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영으로 온 자였다. 누가복음 117절에서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엘리야는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자였다. 말라기 31절에서『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마태복음 18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테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은 세상에 세워질 메시야 왕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바로 메시야 왕국으로서, 로마를 무너뜨리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할 때, 누가 크냐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높은 자리, 큰 자리, 또 영향력 있는 자리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의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던 생각이 있었다. 메시야 왕국은 아주 큰 부자, 높은 자, 영향력 있는 자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와 같은, 세상에 물든 생각을 고쳐 주시면서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지 나아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누구인지 이렇게 두 가지의 답을 주셨다.

천국에서 큰 자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얼마나 상충되는지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다르다. 세상에서는 큰 자가 중요하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다.

천국은 육으로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큰자가 되고, 자기를 내세워 큰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자에게는 작은 자가 되는 것이다. 메시야 왕국인 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제자들 역시 메시야 왕국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예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이 말씀을 불의한 세력을 멸하고 이스라엘 땅에 메시아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 때 즉 마지막 심판으로 인한 회복의 때가 바로 지금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에스겔 371-5절에는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소생하는 환상과 두 막대기가 하나 되는 환상이 등장한다.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여기서 마른 뼈는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나라를 잃고 열방으로 흩어진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물론 두 막대기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죽은 지 오래되어 뼈조차 말라버린 마른 뼈의 환상은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생기가 불어오자,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었다 했다. 또 유다와 이스라엘이라고 쓴 두 막대기가 하나님의 손에서 합쳐져 하나가 되는 환상을 보여주신다. 남북왕조로 분열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흩어진 이방 땅에서 돌아와 하나의 나라로 회복될 것을 보여주신 환상이다.

스가랴 12 6절에는 때가 되면 이렇게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거하게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그 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다.

이런 말씀에 비추어볼 때, 이스라엘의 회복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인 회복을 말하겠지만, 영적으로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옛성전은 무너지고, 새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새성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다.

에스겔 3723-25절『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이 보내신 통치자, 바로 다윗의 후손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의 왕이 되심으로 완성될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귀환 사건 때는 성취되지 못했다. 그 후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셔서 이 예언의 말씀이 다시금 성취될 기회가 주어졌지만, 저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 예언의 성취가 다시금 미뤄지게 되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성령 세례를 주시므로, 새성전이 그들의 심령 속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혜사로 심령 속에 세워진 새성전으로 들어가서 말씀이신 호 로고스로 임재하시는 것이다.“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라”하신 이 예언은 성도에게 예수님의 재림으로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예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도에게는 예수님이 심령 속으로 들어와서 이미 그들의 주인이 되셨으며, 그들의 영은 하늘에 앉히신바 되었다고 성경은 말을 한다. 에베소서 26절에서『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므로, 이를 천년왕국이라고 말을 한다. 천년왕국은 성도의 심령 속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인 것이다.

 

마태복음 18 3-4「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테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의 핵심적인 의미는『육적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누가 큰 자인가를 물었다. 결국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육적 자기를 낮추는 자가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가 되며, 메시야 왕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작은 어린아이와 동일시하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하셨다. 큰 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면, 그것을 예수님은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시겠다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환영하고자 한다면 작은 자 하나를 받아 환영하면 되며,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한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면 주님께서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죽어있는 영, 갇혀있는 영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작은 어린아이라는 것이다. 이 갇혀있는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풀어줄 수 있다면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는 것이다.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죽어있는 영에 대해서 관심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곧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세상의 가치를 따라 무시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18 10절에서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태복음 1821-23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그러므로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태복음 18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호 우라노이스)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21-23절은 복수인 하늘 나라(천국)이지만, 마태복음 1835절은 단수인 하늘로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심령 속의 천국에서 정해지면, 마찬가지로 성부 하나님 나라에서도 같은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 사하심과 심판의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데, 형제가 내게 죄를 범했는데,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일곱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는지 물었다.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무한정 용서를 해 주라는 말씀이다. 용서를 무한정 해 주어야 되는지 설명하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 18 23-35절의 말씀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이 1 만 탈란트 빚진 자요, 형제는 100 데나리온 빚진 자라는 말이다. 1 만 탈란트와 100 데나리온은 비교가 안된다는 말이다. 1 만 달란트는 오늘날로 환산하면 10억 달라 정도의 가지가 있는데, 100 데나리온은 노동자 3개월 정도의 월급(수천불 정도)에 해당된다. 십억 달러와 수천 달러의 비교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볼 때, 나는 이미『하나님으로 부터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의 죄 문제는 해결이 된 것이다. 이제 탕감 받은 후에 100 데나리온의 문제, 즉『남을 용서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형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말한다. 예수님은 새로운 계명으로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영이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다시 죽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용서의 대표적인 이야기가 요셉의 이야기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다. 우리가 미움과 질투를 받으면 저주가 발생한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 열명이 요셉을 죽이려하다가 돈을 받고 팔았던 것이다.

이게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판 것과 같다. 그리고 요셉은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도 누구엔가 미움을 받으면 인생이 갇히는 수가 있다. 인생이 오도가도 못할 때 인생이 갇힌 것이다. 요셉은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보디발 아내의 거짓말에 의해 또 갇힌다. 이번에는 감옥에 갇혔다. 꼼짝 못하는 감옥에서 하나님 말씀이 임하시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용서라는 말이다.『팔아버린 형제를 용서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용서할 대상을 주실 때는『가장 비참한 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배신당해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가장 비참한 때에 온 인류를 용서하신 것이다. 용서를 하면 부활의 역사가 시작된다.

예수님이 죄에 대한 예화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죄사함받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마태복음 20 1「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천국은 심령 속에 세워진 포도원을 비유하는 것이다. 이 포도원이 바로 에덴이고, 성전이라는 말이다. 포도원과 품꾼을 통해서 천국을 설명하는 것이다. 포도원에 들어오는 품꾼이 바로 천국에 들어오는 자가 되는 것이다. 먼저 들어오던 늦게 들어오던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얻어서 포도원에 들여보냈는데, 포도원 주인이 아침부터 들어온 자와 오후 늦게 들여온 자에게 동일하게 품삯을 주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들어온 품꾼은 상대적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포도원주인에게 진정을 하니, 포도원주인이 말하기를 계약대로 품삯을 준다고 말을 하고, 늦게 포도원에 들어온 자도 동일하게 품삯을 주는 것은 포도원 주인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는 늦게 포도원에 들어온 자를 상징하는 이방인에 대한 구원에 대해서 말하려는 비유인 것이다.

이방인에 대한 구원은 마태복음에서 어느 왕의 혼인잔치 비유라든가, 로마의 백부장 부하를 치유한 사례,『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라는 표현들을 통해서 이방인의 구원이 먼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로마서 11 25-27절에서『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바울이『이스라엘은 눈이 감겨지고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누가복음 21 20절에서『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누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두고『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방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누가는『이방인의 때』라고 했다. 누가복음 21 24절에서『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라고 말했다.

 

마태복음 22 2「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어떤 임금은 하나님이시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혼인잔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자기의 신부를 데려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지체는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지칭한다. 교회는 바로 성도이며, 영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육체 속에 갇히므로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신부 삼아서 다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 혼인잔치를 하는 것이다.

혼인잔치는 천하만민 중에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들만 들어간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인 것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하나가 되는 것처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하나가 되어야만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게 부활생명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초청장은 율법과 같은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와 같다고 갈라디아서 3 24절에서 말한다. 율법은 그 속에서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오라는 초청장인 것이다. 이 초청장이 천하만민에게 보내지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다. 초청장을 받은 자가 이스라엘이다.

21장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이방인이 먼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후에 22장에서 혼인잔치 비유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청함을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으로 온전히 통치되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는 성령이 없으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 율법을 통해서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이 땅에서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자기들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라고 하는데, 그들은 이 땅이 좋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려면 육적인 몸을 벗고, 영의 몸(부활)을 입어야 하는데, 그들의 눈으로는 영의 몸(부활)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육으로 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영의 몸이 의의 옷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몸을 말한다. 그들은 부활을 알고 믿지만, 현재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 종들(선지자)을 보냈으나, 이스라엘은 많은 선지자를 죽였다. 심지어 아들까지 죽였다. 이사야 49 6절에서 『그가 이르시되 네(그리스도)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그리스도)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종으로 표현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부활을 위한 초청장을 보냈지만,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감추어져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홀히 하여 알 수 없게 된 것이다.『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으로』의『자기』라는 말이다.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자기가 주인 사람은 육체가 중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땅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부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자기』가 바로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자기라는 존재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악(탐욕)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를 버리라고 말하는데, 비유에서 초청받은 사람들은 자기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를 중시하므로,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누가복음에서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밭을 샀기 때문에, 소를 다섯겨리(25마리)를 샀기 때문에,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초청을 거절하는 자들의 모습은 이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그들은 부활보다 이 세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부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 육체가 죽어서 부활함을 믿었기 때문에 현재적 부활생명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초청장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교회 안에서도 현재적 부활생명을 전하는 자를 모욕하고, 정신적 살인을 강행한다.

초청장이 천하만민에게로 갔다.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네거리는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에 있는 경계를 말한다. 그래서 성령을 받아서 권능받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여기서 악한 자와 선한 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그렇게 불려지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 모든 자들이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혼인잔치에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이 그 사람을 발견하고 잔치 집에서 내 쫒았다.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누구인가? 예복은 자기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복이 혼인잔치 집에 준비되어 있는데,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혼인잔치 집을 채운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한 자들이다. 그리스도로 옷(부활)을 입지 않은 자를 말한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기 위해서는 자기의 옷을 벗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의의 예복(부활)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육체가 죽어서 부활하는 것을 믿는 자들이다. 그래서 흙에 갇힌 자라는 말이다.

자기의 옷을 옛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옛사람이 죽지 않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들이다. 이들은 현재적 부활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자기의 힘으로 의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예복은 내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옷을 벗고(예수와 함께 죽고), 준비된 예복(현재적 부활)을 입으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3 1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천국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 앞에서 방해한다는 말이다.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κλεετε τν βασιλεαν τν ορανν μπροσθεν τν νθρπων) 이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사람들 앞에서 천국을 닫고 라는 말이다. 문이라는 말은 없다. 그들이 천국을 닫는다는 말은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서 방해한다는 것이다. 방해하는 방법은 율법주의를 통해서 방해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천국이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은 메시야 왕국을 오해하는 자들이다. 세상 속에서 메시야 왕국을 생각하며, 오늘날도 예수님이 재림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0 1-3절「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천년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통치의 개념이다. 천년왕국이바로 메시야 왕국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개념으로,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한다. 천년왕국을 이 세상에 예수님이 재림해서 왕으로 통치하는 것으로 생각하므로, 온갖 이상한 교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휴거, 7년 대환난, 천년왕국 등은 성경학자들이 사실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과 영적으로 표현된 것 등을 종합하여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때로는 부분적으로는 성경적인 내용이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신앙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진리인양 믿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신앙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조직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휴거, 7년 대환난, 그리고 천년왕국에 대해 말하고 있는바, 이는 요한계시록 등 성경의 여러 귀절을 통해서 이론적으로, 학설적으로 종합정리를 한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이들을 영적인 의미로 받아드리지 못하면, 신도의 신앙의 목표가 휴거로 집중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휴거에 대한 말이 없다. 다만 휴거로 오인할 수 있는 성경 귀절이 있는데,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415-18절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파루시안)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카타베세타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4 15절의 강림으로 번역된 파루시안(παρουσαν 임재) 416절의 강림인 카타베세타이(재림)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시에는 그리스도 이전의 믿음의 선진들이 먼저 일어나고, 다음에 성도들도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서 영의 몸으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재림해 들어오신 것이다. 그래서 성전이 되고 하나님 나라가 된다. 그래서 파루시안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들어오시는 것이 카타베세타이이고,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 속에 임재(파루시안)하시는 것이다.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의 재림이 있을 것이다.

현재적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은 이전의 것이 죽고, 영의 몸으로 변화되어, 호 로고스를 영접(파루시안(παρουσαν 임재)하게 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51-52절에서『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는 영의 몸에 대한 이야기다. 변화라는 것은 육적 몸이 갑자기 영의 몸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것은 죽고, 영의 몸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의 몸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휴거를 믿는 신도들은 허망한 결과가 되므로, 육적 눈으로 바라보는 학문에서 벗어나, 성경의 말씀을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말론에서 말하는 학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학설들을 살펴보면, 전천년설과 후천년설이 있다. 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다는 것이며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에 있다는 것이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이 없다는 주장으로 “천년왕국은 단지 상징일 뿐 천년왕국은 없다”거나 “그리스도 승천 이후의 전 교회시대가 천년왕국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전천년설도 휴거의 때에 따라 여러가지 학설들로 나뉘어 있다. 성도의 휴거가 언제 있을 것인가를 7년 대 환란과 연관해서 보면,

첫째는 환난전 휴거설로 이를 주장하는 자들을 세대주의자들이라고 한다. 이는 7년 대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성도들이 모두 휴거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환난후 휴거설로 성도들은 모두 다 대 환난을 겪어야 하며 이 환난이 끝난 후 모두 한꺼번에 휴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역사적 전천년설 이라고도 말한다.

셋째는 환난중간 휴거설로 7년 환난을 전3년반, 3년반 둘로 나누어서 환난 중간 때 모든 성도들의 한꺼번에 휴거를 한다는 주장이다.

넷째는 부분 휴거설로 이는 7년 환난 기간 동안 성도들 각자의 믿음이 성숙함에 이르게 될 때 부분적으로 계속해서 휴거된다는 주장이다.요한계시록을 육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재림과 휴거가 기정사실로 받아드린다.

요한계시록 10 1절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휴거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전3년반의 환난의 때가 시작되고 그 전3년반의 마지막 쯤에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이 그 두 증인을 죽이지만, 두 증인은 삼일반에 부활하고 휴거하게 된다는 것이다.

곧 이어 일곱째 마지막 나팔이 불게 되며 성도들의 중간 휴거가 있게 된다. 그 후에 곧이어 후3년반의 대환난 핍박시대가 있으니 이 때는 해를 입은 여자(성령)의 때이다. 이 여인은 후3년 반 동안 극심한 핍박을 받게 된다. 즉 교회가 사탄의 세력에 핍박을 받게 되지만 그 마지막에 해 입은 여자의 남은 자손들은 악한 세력들과 싸울 준비를 하게 된다.

이 남은 후손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 14 4천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인침)를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또 지상재림의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군인들로 악의 세력과의 싸움을 하게 되며, 일곱 대접 쏟는 재앙으로 악한 세력들을 공격하고 마지막 일곱째 대접 쏟는 재앙 즉 아마겟돈 전쟁에서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는 자들이다.

이 전쟁은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나게 되며 사탄은 결박되어 무저갱에 천년동안 갇히게 된다. 이 땅에는 천년왕국 시대가 도래되며, 이 때 14 4천은 순교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 천년왕국 동안 왕노릇 하게 된다(20:4). 그 후에 사단은 결박에서 풀리게 되어 사람들을 미혹하고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키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 세력을 소멸하게 되고 사단은 영원히 타는 유황 불못 즉 지옥에 던지게 된다.

그 후에 곧바로 불신자들이 부활해 예수님의 백보자 심판에서 정죄를 받아 영원히 타는 불못에 던져지고, 거기서 영원토록 극한 고통을 면치 못하게 되지만 성도들은 영원토록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들은 영적인 메시야 왕국을 세상의 메시야 왕국으로 오해하여 나타난 학설과 이론에 불과한 것으로서 믿을 것이 못된다.

 

마태복음 25 1「그 때에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천국을 성령과 연결시킨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권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열처녀는 모두 등불을 가졌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다른 기름통을 가진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고 받아드린 자이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처녀는 말씀을 통해서 부활을 믿지만,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된다는 것을 믿으므로, 결국 어둠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5 4절에서『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그릇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표현하기도 한다. 고린도후서 4 6-7절에서『어두운 데에 빛(부활)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부활)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어두운 데에 빛(부활)이 비치라』라는 말씀은 창세기 1 3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보배는 그리스이시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인간을 의미한다.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들어가셨다는 것이다.『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성령께서 성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게 부활생명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부활생명을 가질 수 있다.

기름은 감람유를 의미한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용하는 감람유이다. 누가복음 4 18절에서『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성령이 임한 것을 기름부은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1 2 20절에서『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 27절에서『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성도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께서 들어오신 것(성령세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허ㅏㄹ생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는 부활생명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빛(부활)이 되어 빛의 생명(부활)을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자가 된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육의 마음으로 판단하여 완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선택적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이다. 부활이 육체가 죽어서 이루오 지는 것으로 믿기 때문에 현재적으로 부활생명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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