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3.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 3 2절에서『회개하라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 βασιλεία τν ορανν")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하늘 왕국이 가까이 온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가 가까이 온 것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부분에서 땅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대된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 중 아무도 이를 깨닫는 자가 없었다. 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영토 개념이다.

요한복음 213-14절『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유대인들이 지키는 3대 명절 중에 하나인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서 남쪽 방향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갈릴리 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힘든 여정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성전 안에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셨을 때 놀라운 풍경을 보게 되셨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왔던 사람들은 비단 예수님과 제자들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지역이 아닌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 먼 거리 여행을 하게 되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준비물들 중에 특히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인 짐승을 손수 이끌고 먼 길을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므로 제물을 예루살렘에서 구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물뿐만 아니라 로마의 경제적 지배를 받고 있었던 모든 나라들에서는 로마의 화폐를 상용했다. 이스라엘 지역에 와서는 로마의 화폐보다는 유대인의 화폐로 환전을 해야지만 제사를 위한 제물 구입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지리적 상황이 성전 이방인들의 뜰에서 제물을 구입하기 위한 환전행위와 제물로 드려질 짐승의 매매행위를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했다.

요한복음 215-17절『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 μ 하나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던 성전이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세 차례 세워졌다. 첫 번째는 솔로몬의 성전이고 두 번째는 스룹바벨 성전이고, 세 번째는 이두매(에돔) 출신의 헤롯이 세운 성전이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 존재했던 성전은 헤롯 성전이었다. 여기서 성전은 성전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이방인들의 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써 누구든지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의 뜰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쪽문인 미문을 통과하면 여인의 뜰이 있으며, 여인의 뜰에서 니카노르문을 통과해야지만 이스라엘의 뜰을 밟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뜰은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써 가로 약 68미터에 폭이 5.5미터로 펼쳐져 있으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문이나 담은 없지만 경계 표시로 계단이 놓여 있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바친 제물이 제단 위에서 제사 드려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뜰 앞에 있는 경계선인 계단을 넘으면 비로소 제사장들의 뜰이 있는데 여기에 제물을 바치는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제단 앞에는 한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언급하셨을 때 그 성전은 누구든지 있을 수 있는 이방인들의 뜰이었다. 여기서는 어떠한 제사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 아니었지만 왜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시는 의분을 표출하셨겠는가? 성전이라고 하는 건물은 이제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성전이라고 말하는 건물은 장사꾼들이 모이는 것으로 전락한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교회 공동체 건물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시키시는 것을 감히 막지 못했던 성전 지도자들은『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하면서 반발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이 말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이 정치적 목적으로 46년 동안 짓고 있었던 성전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말하면서 46년 동안 짓고 있는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는 예수님을 신성모독하는 사기행각을 하는 범죄자로 결론짓고 이때부터 예수님을 본격적으로 죽이려고 음모했다.

3년 후에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예수님을 고소했던 죄목이 마태복음 26 61절에서『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였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쳐다보고 빈정대며 욕한 내용이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여』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바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활하신 자기의 몸을 성전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날부터 유월절마다 수천 수만의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의식이 사라질 것이며, 예루살렘 같은 성전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다음에는 예수님은 성도들의 심령 속에 계시기 때문에 어디에서든지 그를 경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새로운 성전, 새로운 예배를 너희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222절『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에게르테 에크 네크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토 로고)을 믿었더라』에게르테 에크 네크론(ἠγρθη κ νεκρν)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세워졌다(일어났다)는 말이다. 부활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사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로부터 영의 몸으로 세워져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성전이 되었다 라는 의미다.

제자들이 기억한 것은 사흘만에 성전을 세운다는 말이었고, 믿은 것은 성경에서 하신 말씀과 예수께서 말씀하신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 두가지를 믿은 것이다. 호 로고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반쪽짜리 믿음인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신다. 이것이 새성전이다. 옛성전(옛사람)이 무너져야 새성전(새사람)이 세워지는 것이다. 새성전은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에게 세워지는 것이다.

부활은 반드시 옛성전인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무너지고, 새성전인 하늘로부터 오는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부활을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옛사람이 새사람으로 변화된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같은 것이다. 무너진 돌로 된 옛성전을 다시 복구하여 참성전인 것처럼 생각하는 자들과 같은 것이다. 성전은 돌성전이 아니라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죄인들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를 아무도 빼앗을 수 없게 되어있다. 요한복음 10 28-30절『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말에 대해서, 예수는 여호와의 이름이며, 여호와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창세 전에 이미 계획하신 것으로, 범죄한 천사로 인한 것이다.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영들이 자기 백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깨닫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마태복음 1 21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육체로 살아계실 때는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 되지만,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승천하시므로, 이 세상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록 육체로 보이지 않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는 말씀이다. 영토가 땅에서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육체로 계신 것보다,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시면, 성령으로 연결되므로, 성도에게 훨씬 유익이 생기는 것이다. 요한복음 16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여러가지를 깨닫게 해 주신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바로 천국이며, 심령 속에 새 성전이 세워지는 것, 새 성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들어와 임재하시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 심령 속의 성전이 바로 잃어버린 에덴이라는 것, 에덴이 천년왕국이라는 것, 성전이 세워진 자가 성도이며, 바로 십사만사천이라는 존재이며, 성도는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인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권능을 위임하셨다. 사도행전 531-32절『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인간들(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죄사함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페신은 죄로부터 자유함이다. 죄사함이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이다. 죄로부터 죄인을 해방시킬 수 있는 분은 통치자가 되어야 하며, 또한 구세주가 된다.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임금이라고 말을 하므로, 바리새인들이 크게 분노했다. 당시 임금은 로마 황제가 유일하고, 그 로마의 인증 아래, 헤롯 왕이 있었지만, 그들의 공회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유일한 지배계급이라고 생각했는데, 임금이라고 하므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자신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마태복음 2711-12절『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그래서 그들의 임금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을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아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셨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권한은 죄를 사해주는 권한과,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권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를 증거하므로, 증인이 되며, 성령 또한 증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증언하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는데, 여기서 죄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모독죄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속으로 들어오면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고 모든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이를 믿지 못하는 신도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는다는 말은 율법으로부터 벗어난 존재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죄를 적용할 법이 없다는 말이다.

로마서 8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성경은 이렇게 말하는데, 신도들은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용서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으면 정체성의 변화가 있게 된다. 육적 자아에서 영적인 자아로 바뀐다. 그래서 로마서 85-8절『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자신이 여전히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래서 날마다 죄가 생각나는 것이다. 이들은 아무리 죄를 용서받으려고 해도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성령이 증거하는 의에 대한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의에 대해서 살아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의에 대해서 살아나신 것이다. 의는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부활생명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의가 없는 자이다. 부활은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영적으로 영생을 얻는 부활인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신자들은 육체적 부활을 믿고 잇다. 성령이 증언하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50절에서『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는 부활생명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51-53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홀연히 변화되는 것은 심령 속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다는 말이다. 이는 죽은 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일어나는 영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영이 육체 속에 갇혀 죽어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었던 영이 영의 몸을 입고, 부활생명으로 살아난다는 말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은 영의 몸이라는 말이다.

세번째 심판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사탄으로부터 피값으로 회개하는 죄인을 사는 것이다. 요한복음 1611『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사탄사탄부터 죄인을 넘겨받는 것은 사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사탄은 죄인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되는 자는 이미 심판받은 자가 된다. 로마서 66-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렇게 성령이 증언하고 있는데도, 믿지 않는 신도들은 자기의 생각대로 믿는 자들이다. 아무리 성경에서 말해도, 신도들은 육적 경험과 지식에서 벗어나면,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며, 죄 아래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성령이 임할 수 없으며, 오직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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