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 나라로만 표현된 부분
2. 하나님 나라로만 표현된
부분
마태복음 12장 28절「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1장 20절「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탄(마귀)이 쫒겨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귀신이 쫒겨난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영을 지배하는 자가 귀신이었으나, 성령이 지배하므로 귀신이 발붙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람의 영
안에는 성전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에 누가 지배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니면, 사탄의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사탄 또는 귀신이 그 영을 지배한다는
말은 율법주의를 신봉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에게 사탄의
자식들아 라고 말을 했다. 마태복음 12장 34-37절「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권능이 사악한 것이라고
깎아내리기 위해, 예수의 권능은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탄도 집안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 자신의 권능이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사탄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앞에 나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와 천국의 비밀에 대하여 알려고 하기는 커녕 "당신이 진정 메시야라면 큼직한 기사 이적을 한번 일으켜 보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어 드리리이다" 이런 요구를 주님께 하고 있다.
마태복음 12장 38-41절「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하나님 나라는 부활생명을 가진 자가 들어간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한 자가 하늘에 앉히심을
받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여전히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며서도, 율법주의를 함께 신봉하는 자는 여전히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날마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 날마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죄인으로서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주시려고 하는데, 율법주의자들은 스스로 죄에 묶여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우리 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새가
우리의 문이 열려있는데도 나가지 않고, 날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랫동안 잘못된 생각과 사상에 세뇌되어 신도들은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31절「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에 들어가리라」
두 아들에 대한 비유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는데, 가겠다고
하고서는 가지 않았고, 작은 아들은 가지 읺겠다고 하고서는 나중에 회개하여 갔다는 것이다. 큰 아들은 바리새인들을 상징하고, 작은 아들은 세리와 창녀들을 상징한다.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이다.
큰 아들은 율법주의 바리새인을 상징하고, 이들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 예수님은 이들을 사탄의 새끼들이라고
말을 했다.
세리와 창기들은 이방인을 상징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의인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던 자들이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탕자의 비유처럼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했을 때,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대대답에
예수님이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회개하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는 회개하여 거듭난 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거짓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옛사람이 죽지도 않으면서 마치 새사람이
된 것처럼, 예배하고 봉사하고 구원받은 자라고 확신하고 교회 생활을 해도 다 가짜에 불과하다. 뱀의 독에 물려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모두가 다 이런 모습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이처럼』이라는 말은 요한복음 3장 13-14절의 말씀을 이어받는 것이다.『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놋뱀의 이야기는 민수기(21:8)에
나오는 말씀이다. 광야에서 불평하는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어 하여금 물려 죽게 하셨다. 그런데 모세가 살려달라고 간청하자, 하나님이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들게 하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하셨다.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한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당시의 랍비였던
니고데모였다. 말하자면 니고데모가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다. 오늘날도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지 않는 자는 거듭날 수 없는 것이다. 뱀에게 물린 자만 놋뱀을 바라본다. 노아시대 방주에 들어간 자는 의인들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달은 자들이 들어간 것이다. 비가 와서 물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120년간 노아가 외쳐도 일곱명만
방주에 들어갔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의의 도를 전하게 하셨다. 물로 멸망시키겠다는 것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여 방주로 들어가는 자는 구원시켜 주시겠다는 것이다.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왜 깨닫지 못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뱀에 물린 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뱀에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마태복음 21장 43절「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비유는 악한 농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열매를 맺는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받는다는 것이다. 열매맺는 것은 부활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21장 33절『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한 집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울타리(담)가 있는데,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스라엘과 이방 사이에 담을 헐었는데, 율법을
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울타리로 두르고』는 이스라엘에게만 율법을 주신 것을 나타낸다.『즙 짜는 틀을 만들고』포도주는 하나님 말씀으로 율법을 통한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행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으로 가는데, 즙짜는
틀은 성전으로 상징될 수 있다.『망대를 짓고』망대는 초막집이다. 이사야
1장 8절에서『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라고
표현한다. 성경에는 장막, 초막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레위기 23장 42-43절, 아모스 9장 11절, 사도행전 15장 16절, 마태복음 17장 4절에서
잘 나타난다.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농부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성전에서 율법대로 행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시고, 살지 못했으면, 제사를 하게끔했다.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열매는 율법을 통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열매다. 종은 선지자들이다. 이스라엘은
종들을 죽여버렸다. 하나님이 마지막 종(세례요한)을 보내면서 회개를 외치게 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요한도 죽였다. 그런데, 아들(그리스도)을 보냈는데, 아들을 죽여버렸다.『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이스라엘은 아들을 죽여서
유산을 차지하려고 했다. 그들이 율법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포도원 밖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이방인(본디오 빌라도)의 손을 빌려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비유를 하시고 바리새인들에게『너희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으니,『악한 농부를 진멸해야 하고, 포도원을
다른 농부에게 세를 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이 말씀은
다윗의 시편 118편에서 인용한 말이다.
시편 118편 22-23절에서『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예수님이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보시고,『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그들은 예수를 선지자로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2장 7절에서『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지만,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에게는 버린 돌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받아 흩어져 버렸다.
마가복음 9장 1-3절『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누가복음 9장 27절「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권능은 성령의 임하심이다. 성령 강림을 통해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 나라를 보고 경험하는 것을 천국으로 표현한다. 마가나 누가는 천국이라는
표현대신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으로 표현했다.
눈에 보이는 육체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으로 표현하자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에 임하시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된다. 즉 영적인 하나님 나라가 성도에게 임하는 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이다.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여
달라는 것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의 의미는『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주옵소서』라는 말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지게 해 달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한다. 통치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 지는 곳이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하심의 개념이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하느냐 하면, 여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이고 그것을 깨달아라라고 말하고 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 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1차적인 의미는 이 세상에 메시야 왕국이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다스리는,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을 말한다. 천년왕국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예수님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은 세상에서 무엇을 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해야 될 것은창세
때 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있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이룬 뜻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복음 6장 40절에『아들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라 했다. 하나님의 뜻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마다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뜻이『창세 전에 이미 세워졌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다 구원하시려는
뜻을 언제 세우셨는가? 창세 전이라는 말은 영원이라는 말이다. 영원이라는
의미를 인간들은『끝없는 시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생각은 이것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 안에서는 영원을 이해할 수 없게된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세계는 영원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세계를 바탕으로 영원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물질세계는 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물질세계를 창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은『세상에, 흑암에 갇힌 자를 구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흑암에 갇힌 자가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이다. 자기의 지체가 왜 흑암에 있는가?
요한복음 1장 9절에서『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장 5절에는『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어두움과 창세기 1장 2절에서 말하는 어두움은 같은
뜻이다.『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빛이 없었기 때문에 어두움 가운데서 빛이 비추어진 것이다. 흑암에 빛을 비추어 주신 것처럼, 흑암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춰진 것은 흑암 가운데 예수님이 오신 것을 말한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흑암은
세상의 흑암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이 흑암인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마가복음 9장 47절「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눈은 둘이다. 하나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는 육적인 세상을 바라본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제거하라는 말이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손이든지 눈이든지 그 육체(육체로 비롯된 마음이든지)를 가지고
범죄하면『회개하고 용서를 빌어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범죄한 원인을 제거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원인(옛사람) 제거는 하지 않고,『통회하고 자복만 하면 용서해 주신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율법주의를
지향하는 눈이 있다면 빼어버리라는 것이다. 실제 눈을 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라는 말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은 자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날마다 죽노라 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게 된다.
본인들이『나는 율법과 상관이 없다』라고 주장을 해도, 율법의 존재 이유인 옛사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는지 이해를 해야한다. 율법은 죄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죄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안계시면 죄인이 된다.『하나님이 인간들과 대화하고
바라본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속에 함께 할 때 의인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십계명도 필요가 없고, 율법도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속에 있으므로 하나님 그 자체로서 완전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율법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 성령의 인치신 자에게는 율법은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을 말한다. 정죄는 율법으로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법 적용이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법인 것이다. 살아있는 영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율법을 벗어나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 자들은 영적인 눈이 열려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닫히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육의 눈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육의 눈을 닫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마가복음 14장 25절「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2장 15-20절『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마가나 누가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로서, 성도가 살아있을 때,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온다. 성도의 심령 속에
들어온 하나님 나라를 천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도 역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자라는 새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행사이다. 옛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으로서,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땅은
가나안을 의미하지만, 새언약은 영적으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천국)인 것이다. 약속의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고, 그의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 성도는
그러한 의미를 깨닫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유월절 음식은 다섯가지가 있다. 첫째,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양을 구워서 먹었다. 유월절
어린양을 먹는 의미는 죽음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는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세번째, 쓴나물을 먹었는데, 애굽에서의 고난을 기억하는 것이다, 더 이상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나안으로 전진한다는 의미다.
네번째는 포도주를 마셨는데, 네번의 잔을 들었다. 하나는
바로의 고통(사탄)에서 벗어났다는 의미, 그 다음은 애굽(세상)에서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 다음은 죽음의 사자로부터 벗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 다음은 구원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포도주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마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기까지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월절 음식은 부활생명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오늘날 성찬식에서 먹는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 역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자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는 성도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부활생명을 얻게 되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임재하게 되면, 성도는 호 로고스와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다. 피는 생명을 의미하고, 살은 부활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흘리신 피와 살은 대속의 의미를 갖는다. 희생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은 죄를 죽음으로부터 피하는 것이고, 살을 불에 구워먹는 것은 자신도 불세례를
받고 옛사람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에 연합되는 자는 포도주는 영생의
음료이고, 빵은 부활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 43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세상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사탄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데, 병고치는 일과 연계하여 행하셨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셨으며,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말하는데,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병고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표적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병고치는 일이 그들에게는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누가는 병고치는 일과 하나님 나라 복음과 연결시키는 이유에 대해서, 육체의 질병을 통해서,『너희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귀신들린 자들이며, 병든 자들이다. 이렇게 병든 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이다. 병이 들었다는 것은 하늘의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만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일으킨 기적은 눈으로 보면 물리적인 것이지만,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며, 병자들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질병을
고치는 예수님 뿐만 아니라, 영을 살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8장 1-3절「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은 영적으로 귀신들린 자들이며, 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쫒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일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들의 심령 속에 주인은
사탄이었지만,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이 바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된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할 때, 병고치는
것과 귀신 쫒아내는 일을 행하신 것은 사람들이 놀라운 그 기적을 보므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할 때는 열두 제자들과 병고침과 귀신을 쫒아내어 자유인이 된 여인들이
함께 했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모습을 보고, 배워서 향후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그들이 직접 이런 일을 해야만 하기에,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는 것이다. 특히 병고치고, 귀신을 쫒아낸 여인들이
함께 하므로, 그들이 간증하는 말들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듣는데, 좋은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곱 귀신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가장 먼저 부활을 목격한 여인이 된다. 그녀는 예수님께 옥합병을 깨고 향유를 머리에
부으신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3-5절『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이 그림은 나병환자 시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옥합을 깨고 예수님 머리에 붓는 여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세상 왕을 상징하는 애굽의 바로에 신음하는 나병환자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하나님의 대변자 모세를 통해서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가는지를 보여주신다.
이 이야기를 한 여인을 통해서 재조명하는 것이다. 이 여인을 통해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이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미리암은
헬라어로는 마리아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마리아를 주목한다. 그래서 미리암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미리암을 통해서 나병환자가 어떻게 온전한 사람으로 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ὃ ἐποίησεν αὕτη λαληθήσεται εἰς μνημόσυνον αὐτῆς.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이
여자가 행한 것이 그 여자(미리암)의 기념적인 일을 위해
회자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여자가 행한 것을 통해서, 모세
당시 누이 미리암의 일들이 기억나게 된다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들렸다가 고침을 받았다. 일곱이라는
말은 나병환자가 일곱째 날에 고침받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레위기 14장 9절『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제사장으로부터 정하다는 판정을 받은 나병
환자는 진 안으로 들어와서 7일 동안 자기 장막 밖에 머물다가 마지막 7일째에 자기 몸에 있는 모든 털을 밀고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다.(물세례) 그렇게 그는 2차 정결예식을 준비함으로써 2차 정결예식(불세례)을 통하여 비로소 이스라엘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그의
옛 지위를 다 회복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결의식을 하게하는 이유는 육체의 질병이 다 나앗지만,
이것을 통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나병(죄악)을 낫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에서 지키도록 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나병환자들아 너희들은 이것을 보고 영원히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레위기에서 정하고 있는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500여년 동안 율법을 지켜왔다. 그들은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내용을 깨달았어야만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미리암의 기념적인 일은 그녀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문둥병자가 되어 진영 밖에서 보내졌고, 희생양의 죽음을 통해서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한 여인이 옥합을 깨는 것(십자가의 죽음)과 기름붓는 모습(성령세례: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마가복음
14장 8절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하나님을 떠난 자(한 여인)는 예수와 함께 죽고(옥합을
깨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기름을 붓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9장 2절「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누가복음 9장 11절「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누가복음 10장 9-11절「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하나님 나라는 성령의 능력으로 임하신다. 성령의 능력은 귀신에 눌려 있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죄로부터 벗어나고 새롭게 거듭나게 해 주신다. 하늘로부터 오는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을 낫게하신다는 말은 병을 치유하는 것 외에 죄를 사해주는 의미를 갖는다. 마가복음 2장 9-11절에서『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셨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야이셨다. 그들은 오랜기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는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깨닫고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기는 하지만,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믿음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서 본 믿음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을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서 본 것이다. 중풍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중풍병자는 단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치유받기 위해서 온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중풍병을 고치러 왔지만, 오랜기간 들어왔던 메시야를 만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중풍병자는 율법 속에서 메시야를 발견하고, 드디어 현장에서 메시야를 중풍병을 이유로 만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기하기 위해 온 것”을 아셨다. 예수님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중풍병자의 이 같은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사도행전 9장 33-35절『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ἀνάστηθι καὶ στρῶσον σεαυτῷ)』 일어나다 라는 헬라어 아나스테디(ἀνάστηθι)는 물리적으로 일어나다라는 의미보다,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 또는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중풍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태의 환자이다. 중풍환자의 영적인 의미도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낫게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자를 의미한다.
침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 되던 날, 팔년이라는 말은 율법 속에 매여 있던
자를 상징한다.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는다. 할례는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하며, 그리고 언약의 표시를 갖는다. 율법에서 벗어나 복음으로 들어가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중풍병자는 단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치유받기 위함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중풍병을 고치는 목적이지만 오랜기간 들어왔던 메시야를 만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던 것이다. 중풍병자는
율법 속에서 메시야를 발견하고, 드디어 현장에서 메시야를 중풍병을 이유로 만나게 된 것이다.
“자리를 정돈하다” 라는 헬라어 스트로손(στρῶσον)은 자리를 펴다 라는 의미다. 마태복음 21장
8절『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호산나 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펴는 모습이다. 자리를 정돈하다라고 번역하므로 마치 깔았던 자리를 접는 것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그러나 자리를 폈는데, 다시 재정돈해서 이전의 자리와
다르게 펴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병자의 침대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눕는 자리로 바꾸는 것이다. 영적으로는 율법이라는 자리에서, 복음이라는 자리로 바꾸는 것이다.
누가복음 9장 60-62절「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세상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상징한다. 그 이유는 영이 육체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는 영적으로 산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복음을 전하시고, 제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다.
어느 유대인이 제자들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일이 있었다. 제자들은 그런 상황이 불편했다.
밤낮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자신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그들의 축귀를 금하였다.
예수님 당시에 모두가 유대교를 믿는 사회에서
유대인이 예수님의 권능을 믿고 그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일은 예수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들은 적어도 예수님을 악평하고 다니거나 모함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며 오히려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온 예수님 일행을
배척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절기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무리들이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가시다가 사람들을 미리 사마리아의 한 마을로 보내셨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인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사마리아 땅이 아닌 요단 동편의 베뢰아 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거할 숙소와 식사 준비를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그들은 예수님 일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적대적인 유대인들이 많아
그들을 피해 조용한 사마리아 길을 택했지만 그 곳에서도 거절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예수님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거절한 아주 모욕적이고 적대적인 행동이었다.
여기에 분노한 우레의 아들들 즉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이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마치 전날 만났던 갈멜산의
엘리야를 연상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셨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는데, 제자들이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불과 칼, 피와 살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시며
가르치고 계셨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답변에 대한 내용이다. 첫 번째,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지금 당장에 따르겠다고
했으나 주님은 그 길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길인지 알려주신다. 집도 머리 둘 곳도 없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확고한 결단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임을 상기시키시고, 예수님을 따르지만 가족과 마지막을 보낼
시간을 달라는 자에게는 세상에 미련을 두는 자는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곧 떠나게 될 것이라는 책망을 하셨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친히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다. 그는 주저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장사하고 오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는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유혹을 피하고 어떤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말고 따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3장 3-5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아멘) 진실로(아멘)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겐네데 아노덴) 아니하면(에안) 하나님의 나라(톤
바실레이안 투 데우)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은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세례로 표현된다. 물에서 죽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표현하는데, 이는 또한 로마서 6장
3-4절에서도 표현된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성도를 새피조물로 만들어주신다. 그래서 죽었던
영이 일어나, 영의 몸을 입고 하늘에 앉히심을 받는다. 성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 천국에 앉히심을 받아있다가, 육체가 죽은 후에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멘 아멘이라는 말은 정말로 그러하다는 말의 표현이다. 거듭나다
라는 표현의 겐네데 아노덴(γεννηθῇ ἄνωθεν)은 위로부터 태어나다 라는 의미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거듭난다 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었으나 이는 모태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의미로 거듭나다 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아노덴(ἄνωθεν)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순간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통치의 개념이다. 아직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으므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과 반대되는 하나님 나라를 표현한 것이다. 에안(ἐὰν)은 만일 이라는 가정법이다. 가능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원의 핵심은 위로부터 남이다. 예수의
피로 죄를 씻는 것은 세례의 결과다. 세례는 죄를 짓는 옛사람을 처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천국으로 살게하신다. 그래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회개하면 이 땅에 천국이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에 살기 때문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3장 14-15절의
말씀을 니고데모가 받지 못한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입니다』라고 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것 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신앙인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열처녀의
비유다. 모두가 다 신앙인이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구원받지 못했다.
미련한 다섯처녀의 기름이 떨어질 때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으로 부터 들은『인자가 뱀처럼 들린 것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민수기 21장 8-9절에서『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라고 하신 말씀을 재조명하신 것이다. 예수를 믿지만 예수를 믿는 자가 다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니고데모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믿지만 뱀에게 물려서 뱀의
독이 퍼져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회개한 적이 없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마술장이 시몬이 그러했다. 빌립 집사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가 시몬에게 와서『네 속에는 악독이 가득한 자』라고
말했다. 시몬이 니고데모가 그러했듯이 베드로의 말을 받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독사의 독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말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 하늘의 빛이 비춰져야만 알게되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